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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4 11:46 수정 : 2019.03.14 13:50

텃새는 절멸됐고 겨울 철새로 드물게 찾아오는 황새.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보호 새이다.

[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 관찰 일기
느림 속 빠름, 기품 느껴지는 진객 한강하구 출현

텃새는 절멸됐고 겨울 철새로 드물게 찾아오는 황새.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보호 새이다.
오랜만에 귀한 황새를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필자가 한강하구에서 황새를 만난 일은 처음이다. 2월 11일 땅거미 질 무렵 차량으로 이동하다 홍도평야 상공을 낮게 날아가는 황새를 발견했다. 비행고도가 홍도평에서 날아오른 것으로 보였다. 이튿날 그곳에 가 보았지만 관찰되지 않았다. 홍도평은 경기도 김포시 북변동과 사우동에 위치해 김포를 대표했던 평야다. 재두루미와 큰기러기가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수염 같은 앞가슴 깃털에 부리를 숨기는 것은 정상적인 체온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텃새였던 남한의 황새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개체수가 대폭 줄어든 데다 1960년을 전후해 밀렵 등으로 모두 희생되었다. 마지막 번식지였던 충청북도 음성의 1쌍마저 1971년 4월 밀렵으로 수컷이 사살되고 홀로 남은 암컷이 해마다 무정란을 낳았다. 우리나라 마지막 토종 황새였던 이 '과부 황새'는 농약에 중독되어 1983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뒤 1994년까지 살았다. 이제는 겨울철 천수만과 백령도, 금강하구, 해남, 제주도에 5~15마리가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기지개 켜는 황새.
2월 14일 저 멀리 왜가리, 중대백로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황새를 보았다. 그러나 공릉천 탐조 계획을 미룰 수 없어 확인만 하고 자리를 떴다.

황새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곳은 홍도평야에서 사용하던 농업용수를 계양천을 통해 배수하는 관청천으로 아침엔 살얼음이 얼고 오후에는 풀리는 곳이다.

황새는 오후에 이곳의 작은 웅덩이를 찾아와 사냥하고 홍도평야 농경지에서 필요한 먹이를 찾는다. 홍도평야는 특히 재두루미 월동지로 유명한 곳이다.

두툼한 부리는 당장 철판이라도 부술 것처럼 단단해 보인다.
황새, 왜가리, 중대백로가 나란히 서서 쉬고 있다. 마치 키재기를 하는 것 같다.
재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이 서식할 수 없게 훼손되고 있는 홍도평야에 황새가 날아든 것을 보면, 이곳이 여전히 철새들에게 천혜의 장소임은 분명하다. 황새는 지속해서 보이지만 촬영할 수 있는 조건이 쉽지 않고 접근하기도 까다로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2월 18일 아침, 재두루미를 관찰하러 이동하던 중 홍도평야에서 황새를 다시 목격했다. 북상 길에 당분간은 홍도평야에서 머물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후 3시께 홍도평야에 다시 들렀다. 다행히 황새가 관찰과 촬영을 쉽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40여분이 흘렀을까 농경지로 날아가 낱알을 먹는다.

농경지에서 먹이를 찾는 황새.
새들은 경계 거리와 위협을 느끼는 거리를 정해 놓는다. 그 선을 넘어 가까이 가려고 하면 예민해진다. 곁을 잘 주지 않고 더 멀리 피하곤 한다. 그러나 황새가 매우 가까운 거리를 허락했다. 30m 앞이다.

그동안 황새를 관찰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예민한 새도 있겠지만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거리를 지켜주어야 친밀한 만남이 이뤄진다. 사진을 충분히 촬영할 시간이 주어져 자세히 관찰할 기회도 생겼다.

바람에 날리는 가슴 깃털이 마치 흰 수염을 늘어뜨린 것 같다. 쉴 때는 부리를 항상 이곳에 감춰 체온을 유지한다.
부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두툼한 부리는 강력한 힘이 있어 보인다. 붉은 다리, 붉은 눈 선이 매혹적이다. 먼 거리에서 보던 황새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황새의 가슴 깃털이 부드러운 비단결처럼 보였다.

느림의 미학. 태연한 척하며 진중하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에 기품이 느껴졌다. 서두는 법이 없다. 정적이고 느리게 행동하다 부리로 신중하게, 정확하게, 번개처럼 빠르게 사냥하는 것이 황새다.

황새는 절대 서두르지 않고 걷는다.
몸집이 큰데도 도움닫기 없이 그 자리에서 사뿐히 날아오른다.
황새는 몸길이 100~115㎝, 편 날개 길이는 190~195㎝로 꽤 큰 편이다. 날개를 펴면 날개 윗면에 검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나열된 굵은 무늬가 오르간을 연상케 하며 흑백의 미를 더한다.

몸무게가 4.4~5㎏으로 제법 무거운데도 제자리에서 사뿐히 날아오른다. 황새는 울대나 울대 근육이 없어 다른 새들처럼 울지 못하고 목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숙이면서 부리를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낸다.

날아오르는 황새.
즐거워도 슬퍼도 원초적인 몸짓 언어로만 소통하며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동물이다. 황새를 수년 동안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과 친숙하게 지낼 수 있고, 변해 버린 환경에서도 적응이 가능한 새라는 것이다.

황새는 20여일 남짓 홍도평야에서 머물며 김포시 운양동 유수지를 잠자리로 이용했다. 2월 28일 노랑부리저어새와 함께 유수지에서 목격된 이후 황새는 보이지 않았다. 홍도평야를 떠난 황새는 지금쯤 번식지를 향한 2500㎞의 힘찬 대장정을 마쳤을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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