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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9 15:25 수정 : 2019.09.19 16:08

[애니멀피플] 고양이 순살탱
4회. 두 눈이 안 보이는 고양이, ‘댕댕이’ 탱구

인스타그램 7만9천 팔로워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삼형제 순구, 살구, 탱구를 아시나요? <고양이 순살탱>의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단순히 고양이의 귀여움을 전하는 게 아닌, 성묘, 그리고 장애묘 입양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쪽 눈이 없는 살구, 선천적으로 두 눈이 안 보이는 탱구도 반려인의 배려와 사랑으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요. 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 ‘호구 집사’라 불리는 걸 마다치 않는 작가와 세 고양이의 일상을, 책이 출간되기 전 <애니멀피플>에서 단독 연재합니다.

한쪽 눈만 있어도 더없이 예쁜 살구, 두 눈이 보이지 않아도 씩씩한 탱구. 둘 다 성묘로 입양했지만 어린 고양이가 아니어도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느 가을, 평소 잘 보지 않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우연히 확인했다. 선천적으로 안구가 생성되지 않아 두 눈이 안 보이는 고양이를 구조해서 ‘임보’(임시 보호) 중인 분이 보낸 메시지였다. 살구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전했다.

장애가 있는 고양이 입양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제주도라도 괜찮다면 입양처를 구할 때까지 임보하고 싶다고 연락드렸다. 임보만 하겠다곤 했지만 ‘살구를 키우면서 시각장애 고양이에 익숙해진 내가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틈만 나면 앞 못 보는 고양이 키우는 정보를 찾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육지에서 제주까지 무사히 온 고양이는 낯선 환경을 조금 경계하는 듯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자 ‘개냥이’로 돌변했다. 우려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적응이 빨랐다. 손을 댈 때마다 좋아서 박치기했고, 한번 ‘골골송’을 시작하면 멈출 줄 몰랐다.

임보 집에서 같이 지내던 강아지와 노는 영상을 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장난감 하나로도 오랫동안 신나게 노는 아이, 우리 집엔 없던 캐릭터였다. 하는 짓이 강아지 같아 요즘 ‘멍멍이’를 뜻하는 신조어 ‘댕댕이’에 우리 집안 돌림자인 ‘구’ 자를 붙여 댕구라고 불렀다. 자꾸 부르다 보니 댕구보다 ‘탱구’가 입에 착 붙어서 녀석의 이름은 곧 탱구가 되었다.

순구는 살구와 합사할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던 모습과 달리, 탱구를 차분하게 관찰하더니 동생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첫 합사 때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이번에는 적응 기간을 길게 잡았다. 순구와 살구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옷 방에 탱구의 격리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다시 철망으로 집을 만들어 들여보냈다. 또 순살이가 쓰던 담요와 방석을 탱구에게 줘서 냄새에 익숙해지게 했다.

임보 며칠 후, 격리 방문이 열린 틈으로 순구가 먼저 들어왔다. 탱구가 조용히 있자 한참 쳐다보더니 하악질 한 번 없이 나갔다. 그 뒤로 순구는 옷방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와 철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냄새 맡으며 적응해 갔다.

살구 때와 달리 스트레스성 설사 한 번 없이 마음을 열어준 순구의 반응에 용기를 내서, 점점 탱구를 거실에 머물게 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그럴 때면 탱구 곁에서 길도 안내해 주고, 다가와도 가만히 있는 순구의 변화가 경이로웠다. 살구와 있을 때는 한 번도 볼 수 없던 형님다운 모습이었다.

문제는 살구였다. 겁쟁이라 처음엔 임보 방까지 가지도 못하더니, 탱구가 거실로 나오자 질겁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그래도 못되게 구는 게 아니고 겁을 먹어 그런다는 걸 알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탱구가 오면서 순살이의 관계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놀고 싶은 살구가 순구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는데, 이젠 탱구가 살구에게 장난을 걸고 우다다를 하는 통에 살구가 도망 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시각장애로 인한 아픔을 공유하는 탱구와 살구가 친해져 살구의 외로움이 해소되고, 순구는 다시 자유로운 외동고양이로 살게 되길 바랐는데 합사를 해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겁 많은 살구는 탱구를 경계하며 앞발을 휘두르거나,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실은 탱구에게만 처음부터 다정한 순구를 보며 서운했는지도 모른다
툭하면 탱구를 때리는 살구, 맞으면서도 졸졸 따라다니는 탱구 사이에서 한 달 이상 눈치를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구가 탱구의 장애를 눈치챌 정도라면 살구도 모를 리 없는데, 저렇게 탱구를 경계하는 건 순구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순구는 살구가 근처만 와도 하악거리며 피하고, 가끔 살구가 그루밍이라도 해 주려 하면 먼저 때리고 도망가곤 한다. 그런 순구가 탱구를 너무 쉽게 받아들여 준 게, 살구 입장에선 섭섭한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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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구는 계단을 외우는 걸까

합사 일주일쯤 지나자 탱구는 격리방 안에 만든 간이 케이지 틈새로 비집고 나오거나, 아예 케이지를 부수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격리 방 문을 열면 이미 밖에 나와서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날은 방문을 열자마자 거실로 튀어나와 혼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녔다. 어디 한 곳에도 크게 부딪히지 않고 돌아다녔고, 집 전체 동선을 파악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조금씩 순살이가 받아주는 선 안에서 돌아다니게 허락해줬더니, 점점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 임보 방 안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임보 방에만 두면 밤낮없이 울어대는 통에 아예 철망 케이지를 거실로 옮겨 식탁 밑에 고정해 주었다. 케이지 문은 이중으로 막았고, 혹시나 싶어 2층 계단 입구도 높은 철망으로 막은 탓에 순살이도 2층을 오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1층 침실에서 자고 있는데 탱구 울음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려 잠에서 깼다. 어떻게 된 건지 탱구가 2층에서 울고 있었다. 순살이도 못 뛰어넘는 높은 철망으로 계단 입구를 막아뒀는데, 그걸 기어이 넘어 2층으로 올라온 것이다. ‘아, 얘를 정말 어쩐다?’ 아직 탱구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2층 계단을 막아둔 건데, 이런 식이라면 어떻게 막아도 또 올라올 게 뻔했다.

결국 이참에 2층 계단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집 안 동선을 외운 속도로 보아 난간 틈을 밧줄로 촘촘히 막으면 계단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2층에서 울고 있는 탱구를 계단으로 안내해 스스로 내려오게 도와줬더니, 똑똑한 탱구는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길을 이해했다. 처음엔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곧 계단 코너도 잘 피해서 갔고, 턱이 좁아지는 곳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게 넓은 쪽으로 돌아 지나갔다.

탱구가 2층에 오지 못하게 철망으로 막았지만 소용이 없어, 결국 계단 오르내리는 법을 가르쳤다.
길에서 지낸 5개월간 터득한 노하우인지 아니면 타고난 본능인지, 집 안의 동선을 외웠듯 계단 개수도 외워서 다니는 것 같았다. 화장실도 들어오려는 걸 몇 번 막았더니 그 후론 문 앞에서 기다릴 뿐 더는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탱구는 처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외에는 내 도움을 크게 필요로하지 않고 너무나 잘 적응했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탱구를 임보하며 느낀 건 보람이 아니라, 장애를 이겨내는 경험을 함께하고, 누구보다 구김 없이 행복하게 하루를 즐기는 아이와 함께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였다.

순살이와 합사가 원활히 진행되고, 나도 점점 탱구와 정이 들면서 입양을 주저했던 이유가 사라져 갔다. 경제적인 문제나 내 체력 같은 건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섭이 생각은 어떨지가 걱정이었다. 파혼한 후에도 매달 제주로 와서 나를 보살펴 준 섭이와 다시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이서도 제법 사이가 좋아진 모습. ‘순살이네’로 불리던 우리 집은 이제 ‘순살탱네’가 되었다.
우리 가족계획 속 고양이는 둘뿐이었기에, 셋째 입양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탱구를 다른 곳에 보내려 하니 괴로웠다. 내 상황이 힘들다고 포기하는 대신, 순살탱 세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섭이는 그런 내 변화를 대견해 하며 탱구에게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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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개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양이 셋을 키워보니, 녀석들끼리 잘 지내는 데 눈의 개수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집 고양이 중에 눈이 가장 많은 순구가 셋 중에 제일 부실하니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탱구는 유달리 발달한 청각과 후각, 예민한 수염으로 사람과 장애물의 위치, 장난감의 움직임, 화장실과 사료 위치를 단번에 파악해 어려움 없이 사용했다. 내가 조심할 일이라곤 안았다가 내려놓을 때, 자신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스크래처나 방석 위에 올려놓아 주고, 다가가기 전에 이름을 먼저 불러주며 놀라지 않게 하는 정도였다.

큰형 순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탱구는 순구보다 여러모로 뛰어난 구석이 많았다. 장난감에 대한 반응 속도는 오히려 순구보다 빨랐다. 큰 똥을 싸고도 깔끔하게 모래로 잘 덮고 나오는 탱구를 보니,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자기가 싼 똥을 밟고 나오는 순구가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바람에 생각보다 도울 게 없는 탱구의 등장으로, 순구는 ‘우리 집에서 눈 개수는 제일 많지만 손은 제일 많이 가는 큰형’이 되었다.

글·사진 김주란, 인스타그램 @soongu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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