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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6 21:20 수정 : 2005.01.26 21:20

[만나봅시다]

“성공할지 확신 못하지만
도전 그자체로 의미있어”

“되든 안 되든 도전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25일 경기도 남양주시 한민대운동장에서 만난 최향남은 도전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최향남.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민대운동장에서 막내동생뻘인 대학선수들과 함께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이 그의 해외 진출 선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조건은 객관적으로 유리하지 않다. 지난 해 거둔 성적은 고작 2승1패. 그나마 경쟁력 있는 어린 선수들의 부상 때문에 응급처방 선발로 나가 거둔 성적이다. 전성기였던 1998년 엘지(LG)시절에도 그의 성적은 12승12패였다. 선동열 같은 특 에이(A)급 선수는 아니었다. 2003년도에는 부상 여파와 성적 부진으로 엘지에서 방출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주위시선 곱잖아도 오랜꿈 이루고파
빅리그 목표지만 대만 무대도 고려
트라이아웃 받으러 29일 LA로 출국

박찬호와 서재응처럼 가능성을 믿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것도 아니다. 벌써 34살, 프로 15년차다. 주위의 부정적 반응이 무리도 아니다. 그의 부모조차 “내가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며 말렸다. 지금은 그의 뜻을 따라주고 있는 부인도 “주위에서 모두 안 된다고 하더라. 국내에 남자“며 그를 말렸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될지 안 될지는 솔직히 나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다. 설사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나는 도전하고 싶고 그 자체로 의미는 충분하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는 메이저리그나 일본무대를 예전부터 원했다. 단지 자유계약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해 그는 해외무대를 염두에 두고 기아와 처음부터 1년 계약을 했다. 그리고 팀의 잔류요청을 뿌리치고 자유계약을 선언했다. 그는 “메이저리그나 일본무대에 설 수 있다면, 마이너에서 고생해도 좋다”고 말했다. 한때는 독립리그도 고려했다. 대만무대도 생각하고 있다. 대만은 1개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빅리그다. 그는 “국내에서 100승 한다고 해외에서 꼭 통하리라는 법이 없다. 나는 내 체력과 구질을 믿는다. 전성기였던 98년 때 투구자세를 비디오로 분석하면서 투구 밸런스를 맞춰 가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98년 머리 염색파문, 세미프로골프 입문선언 등 ‘풍운아’ 최향남의 도전은 끝이 없다. 그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지켜는 가운데 트라이 아웃을 받기 위해 29일 엘에이(LA)로 출국할 예정이다.

30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 꿈을 말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까, 야유를 보내야 할까?

글·사진 남양주/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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