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과 엘지는 2001년 5월6일 잠실에서 연장 15회까지 무려 5시간45분간 혈투를 벌였다. 프로야구 최장 경기 기록으로 오후 2시1분에 시작돼 밤 7시46분에야 끝났다. 결과는 3-3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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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만은 꼭 꺽는다! 지난해까지 135승 135패 호각세‥ 팬들 인터넷 설전도 팽팽
97년까지 엘지, 이후는 두산 앞서‥ ‘5·7대첩’등 명승부 많아 “두산 이길 때까지 무료 입장이다.”(엘지) “계속 무료 입장하도록 해주겠다.”(두산) 지난주에는 ‘서울 맞수’ 두산과 엘지의 극한 자존심 싸움으로 프로야구의 재미가 폭발했다. 주말 ‘무료 입장’ 이벤트로 두 팀 응원단이 3만 가까이 경기장을 메워 열기는 그야말로 ‘불화로’. 경기 상황에 따라 한쪽 1만5천명은 펄쩍펄쩍 뛰었고, 다른쪽 1만5천명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두 팀 팬들은 “불쌍해서 져 줬다”, “핑계대지 마라”며 인터넷에서 설전을 벌였다. ‘한지붕 두 구단’의 맞수 의식은 꼭 20년 전인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충청도를 연고지로 삼았던 당시 오비(OB) 베어스는 3년만인 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 엘지의 전신인 엠비시(MBC) 청룡과 동거를 시작했다. %%990002%% 지고는 못산다 두산 구단은 대대로 선수들에게 “첫째는 우승, 둘째는 엘지전 필승”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엘지는 두산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해태나 삼성을 라이벌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98년 이후 상대 전적에서 밀리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두 팀은 98~99년 무렵에는 빈볼 시비로 자주 충돌했다. 두산의 타이론 우즈와 엘지 김동수가 ‘맞짱’을 뜬 적도 있다.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보니 서로 트레이드도 잘 하지 않는다. 맞트레이드는 90년 당시 오비 최일언과 엘지 김상호가 유일하다. 똑같은 승패, 매 경기 살얼음판 엘지가 엠비시 청룡을 인수한 90년부터 지난해까지 두 팀의 15시즌 전적은 135승135패. 97년까지는 엘지가 일방적으로 우세했으나, 98년부터 완전히 뒤바뀌었다. 두산은 지난해까지 7시즌 가운데 2000년을 빼곤 언제나 엘지를 앞섰다. 올해도 7승1패로 엘지만 만나면 힘이 솟는다. 2000년에도 10승9패로 엘지가 앞서긴 했지만, 두산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만한’ 엘지와 붙기 위해 막판 2경기를 일부러 져줬다. 두 팀은 유독 어린이날 3연전 때마다 명승부를 펼쳤다. 두산은 2000년 5월7일 9회 2사까지 5-10으로 뒤지다가, 이도형의 3타점 싹쓸이 2루타와 장원진의 동점타로 10-10 동점을 만든 뒤 연장 끝에 11-10으로 이겼다. 이 경기는 두산 팬들 사이에 ‘5·7 대첩’이라는 이름으로 동영상이 나돌 정도다. 2001년 5월6일에는 15회 연장 끝에 3-3으로 비겼다. 이 경기는 프로야구 한 경기 최다 타석(127타석), 한 경기 최다 투구(507) 신기록을 세울 만큼 혈전이었다. %%990003%% 정규리그는 두산, 포스트시즌은 엘지 두산은 정규리그에서 번번이 엘지의 발목을 잡았다. 86년 시즌 때는 전기리그 5위에 그쳤던 당시 오비가 후기리그에서 엠비시를 1경기 차로 제치고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었다. 95년에는 1위 엘지에 6경기나 뒤져있던 오비가 막판에 반 경기 차로 뒤집고 1위를 차지했다. 포스트시즌 때는 엘지가 두산의 약을 올린 경우가 더 많다. 엘지는 93년과 9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잇따라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두산은 98년 10월9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 때는 7-6으로 앞서다가 9회말 동점을 허용한 뒤 10회말 2루수 캐세레스의 뼈아픈 실책으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같은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양키스와 메츠가 2000년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었다. 팬들은 지하철을 타고도 원정 응원을 갈 수 있다고 해서 ‘지하철 시리즈’라고 불렀다. 엘지와 두산이 한국 최초의 ‘지하철 시리즈’를 펼칠 날은 언제쯤일까?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주사위 던져 신인지명‥ 늘 엘지가 이겨, 임선동·이상훈·심재학 쓸어가 연고지가 같은 엘지와 두산은 1990년대 들어 신인 지명권을 놓고 운명의 승부를 펼쳤다. 91년부터 거물 신인이 쏟아져 나오자 두 팀이 연고지 선수 1명으로 제한된 1차 지명권을 갖기 위해 시도한 방식은 ‘주사위 던지기’. 주사위 2개를 던져 합친 숫자가 많은 팀이 지명권을 갖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번번이 엘지가 이기고 두산이 졌다. 엘지는 덕분에 92년 임선동, 93년 이상훈, 95년 심재학을 쓸어갔다. 두산은 97년 딱 한번 이겼으나, 이듬해 김동주를 잡기 위해 엘지에 신인 지명권을 양보했다. 그런데 엘지는 그해 이병규를 지명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98년부터 신인 지명이 자유경쟁으로 바뀌어 ‘주사위’가 사라진 뒤 눈에 띄는 거물 신인도 딱히 없었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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