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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0 17:36 수정 : 2005.04.20 17:36

한화 지연규(왼쪽), 한화 김인철(오른쪽)


프로야구 늦깍이 스타 4인방 “쨍하고 해뜰날 돌아왔단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1970년대 중반 당시 무명가수이던 송대관은 〈해뜰 날〉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일약 인기가수로 발돋움한다. “뛰고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그가 불러대는 이 가사에 좌절과 고난에 빠진 대중들은 희망을 꿈꿨다. 이런 노래를 연상케 하는 ‘늦깎이 스타’들이 프로야구판을 달구고 있다. 롯데의 이용훈, 한화 김인철·지연규, 두산 손시헌 등 4인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한화 지연규 - 오뚝이 야구인생 마지막 불꽃 훨훨

올 시즌 한화 마무리 투수로 빛을 발하고 있는 지연규(36·사진)는 ‘무궁화’다. 그의 야구 인생은 피고 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가 어쩌면 야구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꽃을 피우고 있다.

지연규는 1987년 천안북일고를 고교 2관왕(봉황대기, 대통령기 우승)으로 이끌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동아대 시절에는 88학번 동기인 한양대의 정민태·구대성과 함께 ‘빅3’으로 불렸다. 91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에이스도 그의 몫이었다. 프로 입단도 화려했다. 92년 당시 신인 최고 계약금(8700만원)을 받고 고향팀 빙그레(현 한화)에 들어갔다. 그러나 97년까지 5년간 그가 받은 성적표는 고작 3승4패. 아마 시절 잦은 등판으로 어깨가 말을 듣지 않았다. 97년 7월에는 어깨수술까지 받았다. ‘먹튀’라는 비아냥이 그를 괴롭혔다. 차라리 그만두자고 마음먹고 98년 그라운드를 떠났다.


대전고 코치를 맡아 이른 나이에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2000년 말 10년이나 어린 후배들과 함께 한화의 신인 공개테스트에 응시했다.

복귀 첫해 고작 3이닝을 던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몸의 유연성을 기르는 훈련을 거듭해 하체를 이용한 투구법을 터득했다. 공에 스피드가 붙었다. 구속이 145㎞를 넘어섰다. 2002년과 2003년에는 선발로 25경기나 뛰어 6승을 거뒀다. 그러나 실력은 널을 뛰었다. 지난해에는 중간계투로 나서 4패 3홀드 3세이브를 기록했다.

올 시즌엔 확실히 달라졌다. 김인식 감독은 재활 중인 권준헌 대신 마무리를 맡겼다. 지연규는 20일 현재 6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1.29에 4세이브로 구원부문 2위를 달리고 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지연규에게 팬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한화 김인철 - 프로15년차‥ 당당한 주연으로

연습생 출신,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 두 아이의 아빠….

‘만년 조연’ 한화 김인철(34·사진)이 프로입문 15년 만에 주연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는 포철공고를 졸업하던 1990년 삼성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원래 유격수였으나 강한 어깨 덕분에 투수로 ‘프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97년까지 15승22패. 한해 평균 2승이 채 안되는 성적표를 받았다. ‘반짝’한 해도 있었다. 92년에는 무려 128이닝을 던져 8승을 거뒀다. 완투승도 한번 있었다. 결국 투수 인생은 99년 팔꿈치 부상으로 끝이 났다. 3년을 쉰 끝에 2000년 타자로 전향했다. 그러나 96타석에서 삼진만 무려 21개. 삼성은 그를 방출했다.

자칫 끝날 뻔한 선수 생명은 2002년 ‘스승’ 우용득 감독을 따라 롯데로 이어졌다. 하지만 트레이드가 아니라 공개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그해 후반기에는 그의 장타력을 높이 산 김성한 감독의 기아에 둥지를 틀었다. 포스트시즌에야 엔트리에 합류한 그는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엘지 이상훈을 침몰시키는 동점 홈런을 쳤다. ‘이상훈 킬러’라는 별명이 붙으며 조금 더 선수 생활이 연장됐다.

하지만 지난해 겨우 3경기에 출장하며 기아에서도 쫓겨났다. 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한화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운좋게도 주전 이영우의 군 입대와 고동진의 부상으로 외야 한 자리가 비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범경기 타율 0.324로 타격부문 7위에 올랐다.

시즌이 시작되자 고비마다 한방씩 터뜨렸다. 20일 현재 홈런 4개로 공동 2위. 19일 엘지전에서는 두 차례 호수비로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시즌 전 “백업 요원으로라도 꾸준히 경기에 나가는 게 목표”라던 김인철이 마지막 야구 인생을 활활 불태우고 있다.

김동훈 기자


▲ 롯데 이용훈(왼쪽), 두산 손시현(오른쪽)

롯데 이용훈 -‘불펜 황태자’서 ‘마운드 황태자’로

불펜에서는 끝내줬다. 그런데 마운드만 올라가면 사정없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그에게 황태자란 칭호를 붙여줬다. ‘불펜의 황태자.’ 취향에 따라 ‘새가슴’, ‘불펜 20승 투수’로 부르기도 했다.

원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잘나갔다. 2000년 경성대를 졸업하고 계약금 2억5천만원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다. 공은 시속 150㎞가 넘었다. 투수가 귀했던 당시 달구벌에선 “우리도 드디어 선동열 같은 투수가 생기나 보다”고 들떴다. 그해 전반기엔 8승4패를 거둬 강력한 신인왕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불안한 제구와 거듭되는 부상. 그의 이름은 빠르게 잊혀졌다. 삼성은 2년 만에 에스케이로 그를 내보냈고, 에스케이도 2003년 그를 버렸다.

어느덧 5년차. 2004년까지 통산 16승18패(평균자책 6.97). 당시 그와 신인왕을 다퉜던 이승호(에스케이)는 연봉 1억3500만원을 받는 팀의 기둥이 돼 있었다. 한때 술 마시고 방황하던 연봉 3800만원의 ‘황태자’는 이를 악물었다. 힘든 재활을 하면서 정신력도 강해졌다. 어느 때보다 힘든 겨울훈련을 했다. 체인지업(직구와 같은 동작으로 던지지만 빠르기가 현저히 느린 구질)을 집중적으로 갈고 닦았다. 틈틈이 스포츠 심리학 책도 읽었다. 손민한에 이어 제2선발이 됐다. 지금껏 1승2패(평균자책 3.38). 썩 좋지는 않지만 속은 꽉 찼다. 비록 1안타 2실점 하며 졌지만 15일 두산전에서는 삼진을 13개나 잡아냈다. 탈삼진 21개로 2위. 그는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깝다”며 “두 자리 승수를 채워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한동안 늦가을에는 야구를 못 봤던 부산 팬들 앞에서 그는 진짜 황태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롯데 이용훈(사진) 얘기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두산 손시헌 - 연습생신화 이젠 내가 주인공

올 시즌 초반 잘나가는 유격수 손시헌(25·두산·사진)은 연습생 신화를 꿈꾸는 ‘작은 곰’이다. 그는 ‘사회는 냉정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1m72, 73㎏. 야구 선수치고 작은 몸집은 번번이 그의 행로에 발목을 잡았다. 빼어난 수비 능력에도 선린인터넷고 졸업 뒤 야구 명문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했다. 2003년 연습생이나 다름없는 ‘신고 선수’로 두산에 입단해 프로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작은 체구라는 약점은 그를 계속 옥죄었다.

그렇지만 손시헌은 ‘넓은 수비 범위’, ‘젊고 강한 어깨’라는 두 개의 주무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가 두산을 택한 것은 ‘은사’ 김민호 전 코치와의 인연도 있었지만, 두산 내야진이 노쇠해서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그런 생각은 적중했다. 입단 첫해 7월1일 마침내 1군에 합류했고, 유격수 주전자리도 꿰찼다. 그 다음부터는 ‘성공가도’였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해 병역비리 파동 때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병역 기피는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경우였다. 9월께부터는 1군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어렵게 주전이 됐는데 야구를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라운드에서 멀어지면서 몸무게는 8㎏ 가량 늘었다. 전지훈련도 따라가지 못했다.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웨이트트레이닝에 몰두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 시즌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는 9번타자를 맡았지만 현재 타율 0.302(2홈런, 10타점)로 불방망이를 뽐내고 있다. 타율 0.280, 50타점, 10개 이내 실책. 올해 내세운 목표다. 장종훈, 박경완에 이어 그가 새로운 연습생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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