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연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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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업 꼬박꼬박 ‘영문바둑서’ 내
제2외국어 익히기·소설 쓰기도 도전
가욋일 관심? 방식 다를 뿐이예요
제3의 길 개척하는
한국 여자바둑 1위 조혜연 9월 한국 여자바둑 1위 조혜연(24·고려대 영문과 3년) 8단은 ‘연구 대상’이다. 11살 10개월 때 입단해 조훈현(9살) 이창호(11살)에 이어 세 번째로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됐다. 여자로는 최연소 입단이다. 대학생이 돼서는 학교수업 100% 출석, 영문 바둑서 출간 작업, 영어·일어 정복에 이은 스페인어 도전까지 가욋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프로이면서 일요일 대국은 거부하는 괴팍한(?) 면까지 지녔다. 그럼에도 6월에는 국수전 본선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여기사가 됐다. 남자기사들조차 조혜연과 맞대결하기를 껄끄러워한다. 4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알쏭달쏭한 조혜연 8단을 만났다. 이날 10단전 본선 1회전에서 남자 기사를 꺾고 2회전에 진출해, 공동 1위인 루이나이웨이(중국)보다 한 발짝 앞서게 돼 표정은 밝았다. -여자 1위다. 무슨 비법이 있는가? (수줍게 웃더니) “바둑 이외의 활동이 바둑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10권의 시리즈로 구상한 영문 창작 사활서를 쓰면서도 많이 배운다. 영문 블로그 경이로운 세계(Full of Surprises)를 운영하고 공부를 하면서 얻는 다양한 경험은 결국 바둑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학교 수업보다 바둑에만 전념했다면 여자 바둑이 더 발전했을 거라는 얘기도 있다. “다른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선배 기사들이 보기에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바둑은 여전히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바둑이 전부는 아니다.” -바둑과 수업 중 어느 것이 어려운가?
“공부를 하면서 바둑이 더 재미있어졌다. 수업이 너무 어려울 때는 바둑이 쉽다는 생각도 한다.” 조혜연 하면 한-중-일 세 나라별로 5명의 여류 기사가 단체전을 벌이는 정관장배가 연상된다. 국내 최강이지만 일요일 대국 일정이 끼어 있어 그동안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3월 정관장배 대회에서 한국이 중국에 초유의 참패를 당하자 조혜연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이달 시작하는 정관장배에 또 나오지 않는데? “이번에는 한국기원에서 요청도 있고, 한국 여자바둑의 자존심도 있고 해서 고민을 했다. 1~3라운드 중 일요대국이 없는 마지막 3라운드에 뛸 수 있느냐를 문의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프로페셔널인데 일요일 대국을 안 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일요일에는 예배를 봐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을 지켜왔다. 지금 와서 바꾸기는 어렵다.” -중국 여자 바둑이 급성장했다. 어떻게 보는가? “지난번 삼성화재배 예선에서 중국의 송용혜 5단과 맞대결해서 불계로 이겼다.(송용혜는 지난 정관장배에서 6연승을 달리며 한국과 일본의 초반 예봉을 꺾으며 중국 우승의 선봉이 됐다. 이후 5단으로 특별 승단했다) 송용혜가 나랑 비슷한 실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비슷하다면 잘 둔다는 뜻인가? (웃음) “나처럼 잘 두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둑 하나에만 올인하지 않는 조혜연은 ‘제3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국 이외에 바둑 문화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것도 대중과 접점을 넓혀 바둑 확산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바둑 소재의 소설까지 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반인들이 바둑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고민하고 있다. 프로 기사들의 삶의 고뇌를 소설로 쓰는 것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바둑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바쁘게 보낼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바둑이 안 된다는 속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기사들이 그럴 테지만, 서른이 넘어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기 때문에 풋풋하고, 때로 덤벙대는 조혜연의 말투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그 자신감과 함께 쭉 좋은 기보 남기기를 바라는 것이 팬들의 마음일 것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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