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여행
강원 영월 버스터미널~장릉~청령포, 김삿갓유적지~고씨동굴 1박2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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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 물 건너편이, 단종이 1457년 6월부터 두달여 동안 유배됐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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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은 수려한 동강 물줄기 등 청정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깊고 깊은 산골인데, 대도시 못잖은 풍성한 역사·문화·예술 자원을 갖추고 있어 더욱 돋보인다. 동강사진박물관·국제현대미술관 등 30여개에 이르는 박물관·미술관을 보유한 ‘박물관 고을’이다. 단종의 한이 서린 유배지다. 날카로운 풍자·해학에 빛나는 시인 김삿갓(김병연·김립)의 발자취 깃든 ‘문학의 고을’이다. 첫날 영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장릉과 청령포 등을 둘러보았다. 다음날 김삿갓유적지와 고씨동굴 등을 찾았다.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며 일부 박물관도 둘러보는 1박2일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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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유적지로 향하는 영월교통 완행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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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시장·관풍헌 들러 장릉으로
먼저, 터미널 옆의 서부시장에 들렀다. 먹을거리 많은 상설시장이다. 영월 오일장(4·9일)은 따로 영월대교 밑 동강 둔치에서 벌어진다. 서부시장은 닭강정·순댓국도 유명하다지만, 이곳 명물은 역시 메밀음식이다. 골목 안쪽에, 메밀전병·메밀배추전 등을 파는 좌판 10여곳이 몰린 먹거리장터가 있다. 메밀전병을 안주로 소주·막걸리 잔을 기울이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하나 천원이래요. 뜨거울 때 잡사. 식으면 맛이 안 나.” 김치가 듬뿍 들어가 매콤한 메밀전병을 맛보며 둘러보니, 수수부꾸미·올챙이국수 등을 함께 파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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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서부시장 먹거리장터의 메밀전병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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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조선시대 관아터의 관풍헌을 찾았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의 피눈물이 흘렀던 장소다. 이 지역 서강에 둘러싸인 청령포에 유배됐던 비운의 단종은 홍수가 나자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17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옆엔 단종이 자신의 처지를 슬피 우는 소쩍새에 빗대 시를 지었다는 누각, 자규루(본디 이름은 매죽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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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관아터의 관풍헌. 청령포에 홍수가 나자 단종은 거처를 이곳으로 옮겼고, 앞 마당에서 사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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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 네거리로 돌아와 장릉 가는 버스를 탔다. 네거리 옆 김약국 앞 정류소다. 보통 1시간에 2~3번 오는, 미탄행이나 주천행 버스를 타면 된다. 도보 20분, 2정거장 거리로 춥지 않다면 걸어도 좋다. 기본요금 1200원.
삼촌한테 죽임 당한 단종 유배지
장릉·역사관 등 둘러볼 곳 많아
조부 욕되게 한 자책감에
평생 떠돈 김삿갓 유적지도 인기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40기의 조선왕릉 중 하나다. 사사된 단종의 유해를 영월 호장 엄흥도가 동강에서 수습해 몰래 묻었다. 241년 뒤인 숙종 24년(1698년), 그 자리에 왕실의 예를 갖추어 능 이름을 정하고 정비한 게 장릉이다. 능에 가기 전 단종역사관을 들러 보는 게 좋다. 12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2년4개월 만에 작은아버지 수양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됐다가 끝내 사약까지 받은 어린 왕의 짧고 슬픈 생애를 살필 수 있다. 역사관 뒷문으로 나가 나무계단을 올라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잠시 걸으면 장릉에 이른다. 제사를 준비하던 재실과, 충신 268인을 모신 장판옥, 정자각·수라간·배식단·엄흥도정려각 등의 건물들, 제를 올릴 때 쓰던 우물 영천 등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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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의 정자각(丁字閣). 능에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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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앞 정류소에서 20여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산길을 달렸다. 한 정거장 뒤 소나기재에서 내리면 선돌을 볼 수 있다. 100m쯤 걸어가 만나는, 절벽 옆으로 우뚝 솟은 선돌(일명 신선암)과 그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서강 물길이 아름답다.
버스편 뜸해도 김삿갓 시에 흠뻑
김삿갓 유적지행 완행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 안 승차장에서 탈 수 있다. 터미널 승차장 한쪽 끝에서 고씨동굴 거쳐 김삿갓유적지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출발한다. 요금 3200원. 아침 6시25분부터 저녁 6시40분까지 하루 5차례 운행한다. 이 노선에 조선민화박물관과 묵산미술박물관도 있다. 배차 간격이 뜸하므로 볼거리 선택과 차 시간 확인에 신경 써야 한다. 아침 8시30분 차로 먼저 김삿갓유적지까지 직행한 뒤 돌아오면서 조선민화박물관·고씨동굴을 찾기로 했다.
버스 종점이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마을이다. 본디 하동면이었으나 ‘김삿갓’이 뜨면서 면 이름까지 바꿨다. 역시 먼저, ‘난고 김삿갓 문학관’에 들르는 게 좋다. 김삿갓이 왜 빼어난 시인이고, 왜 방랑을 시작했으며, 그의 묘소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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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의 자서전적 작품인 ‘난고 평생시’가 실린 한시집 <금옥>. 김삿갓문학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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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병연(1807~1863)은 경기도 양주 회암리에서 태어났다. 5살 때 일어난 홍경래 난 때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 투항한 죄로 처형됐다. 부친은 귀양살이를 하게 됐다. 나머지 가족은 황해도에서 숨어 살다 이곳 노루목 부근의 ‘어둔골’에 정착했다고 한다. 17살에 결혼한 김병연은, 영월 동헌에서 열린 과거시험에서 김익순의 행적을 비판하는 시로 장원급제했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했다며 벼슬길을 버리고 방랑길을 떠났다. 57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금강산·지리산 등 전국 각지를 떠돌며, 번뜩이는 재치와 해학이 담긴 파격적인 시들을 남겼다. 문학관에 전시한 시를 통해 그의 자유분방한 성품과 빼어난 언어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김병연 사후 3년 뒤 둘째아들이 화순에서 노루목으로 이장해온 묘의 위치를, 평생의 노력 끝에 찾아낸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의 열정이 감동적이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을 돌며 김병연의 시 177수를 모아 처음으로 <김립시집>(1939년)을 펴낸 이응수 이야기도 귀감이 된다.
김병연 묘에서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상투를 튼 ‘자칭 김삿갓’을 만났다. 묘소 관리인이다. “여가 태백·소백 양백지간의 명당 노루목이라. 두 산의 기운이 모이는 자리요.” 이 ‘김삿갓’이 거주하는 곳이 바로, 김병연이 실제로 살았던 어둔골에 복원해 놓은 ‘김병연 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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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묘. 묘비 앞에 선 이는 묘를 관리하는 자칭 ‘김삿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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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박물관 최고 인기는 ‘춘화방’
문학관 앞에서 12시20분에 출발하는 영월읍행 버스를 타고 김삿갓 계곡을 따라 내려가 조선민화박물관에 들렀다. 지난 2000년 문 연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으로, 소박한 서민 정서가 듬뿍 담긴 조선시대 민화 4500점을 보유한 곳이다. 1층엔 ‘작호도’(까치와 호랑이 그림), ‘어변성룡도’(물고기가 용으로 변한다는 뜻을 담은 그림) 등 전통 민화를, 2층엔 현대 민화를 전시했다. 해설사가 상주하며 개인에게도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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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화박물관. 상주하는 해설사가 민화 설명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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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은 따로 있다. 2층 구석에 마련된, ‘19금 춘화방’이다. 조선시대·일제강점기의 조선 춘화와 일본·중국의 춘화 등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 얼굴 붉히며 한번 슬쩍 둘러보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찬찬히 들여다보는 아저씨·아주머니도 있다. 처음부터 꿋꿋이 정밀감식에 들어가는 청춘남녀, 여자친구에게 아예 그림 해설을 해주는 젊은 남자도 있었다. “이 남녀가 절구에 기대서 하고 있지? 절구와 절굿공이가 바로 성행위의 상징물이거든.”
적나라한 춘화를 감상하다 보니, 김삿갓문학관에서 만난 김병연의 시 ‘운우지정’이 생각났다. ‘위위불염경위위(爲爲不厭更爲爲)/ 불위불위경위위(不爲不爲更爲爲)’(해도 해도 싫지 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 안한다 안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
민화박물관에서 약 3㎞ 떨어진 든돌마을에는 묵산미술박물관이 있다. 김홍도 등 조선시대 한국화의 진품들, 현대작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미술·공예 체험공간이기도 하다.
3시15분 버스를 타고 김삿갓면 소재지인 옥동리 지나 고씨동굴(고씨굴)을 찾았다. 임진왜란 때 고씨 가족이 피난했다는 동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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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동굴 탐방로 끝부분의 종유석과 석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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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서강이 합해져 흐르는 남한강 물길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입구가 있다. 비좁은 바위굴을 따라, 몸 낮추고 머리 숙여야 둘러볼 수 있는 자연동굴이다. 왕복 1시간쯤 탐방하는 동안 물과 시간이 수십만년에 걸쳐 빚어낸 종유석·석순·석주 등 다채로운 동굴생성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탐방로 끝부분의 석주와 종유석이 가장 볼만하다.
고씨굴 앞 88번 지방도에선, 상동 쪽과 단양 쪽에서 와 영월읍내로 가는 버스 노선이 보태져 버스 타기가 다소 수월하다. 읍내까지 10여분 거리. 고씨굴 관광지엔 식당도 즐비하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강원 영월 완행버스여행 정보
대중교통 서울 동서울~영월 무정차 고속버스 하루 8회 운행. 2시간10분 걸림. 1만5300원. 강남(센트럴시티)~영월 하루 4회 운행. 2시간30분 걸림. 1만2400원. 영월군내 완행버스(시내버스)는 노선이 복잡하고, 배차 시간도 뜸한 편이다. 정류소 기둥에 붙은 노선·시간표를 통해 종점과 경유지, 출발시각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특히 읍내 주변의 장릉·선돌행은 여러 노선이 겹쳐 있어 1시간을 기다려 타야 할 때도 있고, 1시간에 서너번 올 때도 있다. 청령포나 선암마을 한반도지형 등은 차편이 하루 2~3편에 불과해 버스 여행엔 알맞지 않다. 영월엔 시티투어버스도 없다.
먹을 곳 영월읍 단종로16번길 김인수할머니 순두부집의 순두부·청국장, 장릉 옆 골목 장릉보리밥집의 보리밥, 장릉 앞 도깨비장터 식당의 곤드레밥·두부찌개, 영월읍 하송 은행나무길 상동식당의 막국수. 고씨동굴 앞에 산채비빔밥·막국수 등을 내는 식당이 많다. 김삿갓문학관 앞에도 식당들(주로 닭·오리 요리와 찌개류)이 5~6곳 있다.
묵을 곳 영월읍에 퀸모텔·테마모텔 등 모텔이 몇 곳 있다. 고씨동굴 앞에도 모텔이 한 곳 있고, 김삿갓문학관 앞에는 민박집들이 있다.
여행문의 영월 종합관광안내소(장릉) (033)374-4215, 영월시외버스터미널 (033)374-2451, 영월교통 (033)373-2373, 영월콜택시 (033)375-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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