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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7 14:24 수정 : 2019.12.07 14:25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이탈리아 드라마 <세이렌>

지중해에 사는 인어 야라는 하루아침에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약혼자 아레스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육지로 나온다. 낯선 인간들의 세상에서 헤매던 야라와 가족들은 숙박업자이자 배구 코치인 살바토레의 집에 머물게 된다. 아레스의 흔적을 쫓던 야라가 그녀를 돕는 살바토레와 조금씩 친해지는 사이, 다른 가족 역시 그토록 경계하던 인간들과 점차 가까워진다.

엄마 마리카는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휘둘리는 여성에게 용기를 주고, 여동생 이레네는 심장병을 앓는 소년 미켈레와 풋풋한 첫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막상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아레스는 인간세상에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살바토레와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는 야라 또한 종족의 운명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에 빠진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이전에 ‘세이렌’ 전설이 있었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였다는 이 존재들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목숨을 빼앗는 괴물 혹은 마녀로 묘사된다. 메두사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향한 혐오와 공포를 동시에 상징하는 세이렌은 ‘인어공주’ 이야기에 와서, 사랑 때문에 자신의 가장 큰 힘이었던 목소리를 스스로 희생하는 여성으로 퇴보한다. 유럽드라마 채널 `채널유'(CH.U)에서 방영 중인 이탈리아 드라마 <세이렌>(원제 ‘Sirene’)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인어 이야기의 기원을 세이렌 전설로 되돌리고 안데르센 동화의 한계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드라마 속에서 야라가 사는 인어의 세계는 철저히 여성 중심적인 세계로 묘사되고, 남자 인어는 자기 목소리가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야라가 육지에 나온 것도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인어족의 차기 왕으로서 지중해의 마지막 남자 인어인 아레스를 찾아 종족 보존을 하기 위함이다. 페미니스트 세상에서 온 인어들은 남자의 목소리가 훨씬 큰 인간세계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인간 남자를 마법으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뿐 아니라, 남성에게 눌려 사는 여성에게도 도움을 준다. 그런가 하면 바다세계에서 늘 남들이 하라는 대로만 살았던 남자 인어 아레스가 인간세상에서 젠더 권력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씁쓸한 유머다.

다만 <세이렌>은 이 모든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보다 판타지 로맨스의 대중 서사 안에 안전하게 연착륙시킨다.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던 야라가 살바토레에게서 감정을 학습하고 인간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전형적인 로맨스 플롯을 따라간다. 그 안에서 성차별 문화를 꼬집는 문명비판적 태도도, 결국 서로를 존중하고 대등하게 소통하자는 동화 같은 메시지로 순화된다. 그 이전에, 이야기 내내 인물들 뒤로 펼쳐져 있는 나폴리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자체가 모든 갈등을 해맑게 감싸버린다. <세이렌>은 적당히 지적이고 현실비판적이면서도 로맨스 장르 고유의 낭만적 판타지를 유지하며 달콤하고 쌉싸름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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