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0 23:18
수정 : 2018.12.20 23:56
“사실혼도 가족” 법 개정 추진
민법·가족관계등록법·의료법 등
관련 법 손봐야 실질적 변화
‘가족 다양화’ 공론장 열릴듯
현재는 동거인 응급실 가도
수술 동의서에 사인도 못해
사회보험·주거권 차별 없애려면
구체적 제도 변화 더 논의해야
사실혼을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 정의에 포함하는 것이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출발점이 될까? “시작의 의미는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건강가정기본법을 기반으로 시행되는 가족 관련 지원 정책이 한정적이어서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 등이 함께 바뀌어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20일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2019년 업무보고’ 내용대로, 사실혼을 법률상 가족의 범위에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가족 관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혼인신고를 원치 않거나 거부하는 이들의 권리가 확대된다. 실제로 여가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방송인 허수경씨는 지난달 21일 열린 동거가족간담회에서 진선미 여가부 장관을 만나 “법적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으니, 배우자가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수술 동의서 등에) 사인을 하거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허씨는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사실혼 관계지만 법적으론 ‘한부모 가정’ 구성원이다.
이번 법 개정을 시작으로 사실혼과 동거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그랜드 플랜’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업무계획을 실행하려 해도 민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 예컨대 여가부가 밝힌 ‘혼인 외 출생’ 표기를 폐지하려면, 민법이나 가족관계등록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 출생신고서는 자녀가 ‘혼인 중 출생자’인지 ‘혼인 외 출생자’인지를 신고자가 표시하도록 돼 있다. 민법에 따르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강한 추정을 받는다. 여가부 관계자는 “민법 체계를 바꿀지,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할지 등 구체적인 방안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혼을 법률상 가족의 범위에 포함해도 남는 문제는 있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실제로 가족정책의 변화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신호탄이라고 보기엔 이르다”고 밝혔다. 연금, 보험, 상속제도에서 이른바 ‘정상가족’이 아니란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사회보험제도와 주거권 등 사회정책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체적인 법체계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신하영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민법을 개정해도 법들 사이에 가족 개념이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할 것”이라며 “‘가족 개념 다양화’에 대해 각각의 법에서 일관되게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장이 열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1999년 동거 커플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연대협약(PACS)을 도입해, 법률혼 관계의 부부와 동일한 세제 및 사회보장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말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비혼 동거가족에 대한 사회·제도적 차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다해 박현정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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