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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7 19:57 수정 : 2020.01.18 02:34

지난해 12월11일 국회 중앙홀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해 12월11일 국회 중앙홀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4월 총선에서 ‘비례○○당’ 이름을 쓸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자유한국당이 만든 ‘비례자유한국당’을 비롯해 ‘비례한국당’, ‘비례민주당’ 등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인 3곳의 창당이 불허됐습니다.

이에 한국당은 “선관위의 공정성이 무너졌다”며 반발했습니다.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지난 16일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도 청구했습니다. 창준위는 과거 ‘민주당’이 있을 때 ‘더불어민주당’이 등록한 사례를 들며 선관위를 향해 “‘비례○○당’에 대해서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자의적으로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선관위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비례○○당’을 차별하고 있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국회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취재하는 정치팀 기자 이주빈입니다. 정당법 41조3항은 “창당준비위원회 및 정당의 명칭(약칭 포함)은 이미 신고된 창당준비위원회 및 등록된 정당이 사용 중인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명칭이 확정될 당시 선관위는 ‘더불어’는 ‘더불다’ 동사의 활용형으로서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이라는 명칭과 구별된다고 봤습니다. 다만 선관위는 ‘민주당’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의 약칭을 ‘더민주당’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대한애국당이 ‘신공화당’으로 명칭을 변경하려 했으나 선관위는 이미 등록된 ‘공화당’과 이름이 비슷하다며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선관위 판단을 살펴보면, 당명 일부가 중복된다 하더라도 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핵심어가 붙느냐 아니냐가 당명 사용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관위는 ‘더’나 ‘신’이라는 단어는 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보기 어렵고 기존 정당과 혼동을 낳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건데요. ‘비례○○당’에 대한 결정도 같은 맥락입니다. 선관위는 “‘비례’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어떠한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렵고, ‘비례’라는 단어와의 결합으로 이미 등록된 정당과 구별된 새로운 관념이 생겨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1월17일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중앙선관위에 미래한국당 창당준비위로 명칭을 변경해 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한국당에 중요한 건 비례정당의 명칭이 아닙니다. “앞·뒤·중간에 뭐를 끼워넣을지 무궁무진하니까 이름이야 신경 안 쓴다”고 했던 심재철 원내대표의 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당을 둘로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인데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선거법에 따라 21대 총선(국회의원 정수 300명)은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으로 나뉘는데,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 한정해 50%의 연동률을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ㄱ정당이 10%의 비례 득표를 했다면 300석 중 30석을 가져가야 하는데, 지역구에서 20석을 얻었다면 10석은 비례대표로 충원되는 것이 100% 연동률 비례대표제입니다. 연동률 50%를 적용하면 절반인 5석이 비례대표 의석으로 인정돼 전체 ㄱ정당의 전체 의석은 25석이 됩니다.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을 것으로 보이는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비례 의석을 가져가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죠. 그러니 어떻게든 비례대표용 정당을 만들어 의석을 늘리겠다는 게 한국당의 계획입니다.

선관위의 ‘비례○○당’ 명칭 사용불가 해석에도 한국당은 비례정당을 밀어붙일 기세입니다. 아예 지금의 한국당 자체를 비례정당으로 만들고 지역구를 위한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도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한 한국당 지도부 의원은 “의원들을 이동시키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의원들을 비례정당으로 보내기는 어렵지만 지역구 정당으로 보내기는 쉽다는 겁니다. 또 다른 변수는 보수 통합입니다. 보수가 통합해 신당을 창당하면 따로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당이 두 개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 봤던 거지요.

김성원 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13일 “선관위가 내세운 ‘유권자 혼란 우려’는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정당 설립의 자유를 대놓고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당이 비례정당의 이름을 비슷하게 지은 이유야말로 유권자 혼란을 ‘기대’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거대 정당이 지지율에 비해 과잉 대표되는 일을 막고 소수 정당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하겠다는 선거법의 의도를 몰각하고 국민의 수준을 진짜 무시하는 게 누구인지 한국당은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주빈 정치팀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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