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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7 19:30 수정 : 2020.01.18 02:32

[토요판]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① 업고 업히는 학부모 상담

내 학부모 상담은 초지일관 “어머니, 아버지, 당신 아이는 참 괜찮습니다”이다. 진심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가 알바를 하는데요. 월급 중 20만원만 용돈으로 쓰고 나머지는 엄마가 관리하다가 성인 되면 받기로 했어요. 그런데 저는 총액을 제 통장으로 받고 2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제가 직접 엄마 통장으로 입금해드리고 싶어요. 그러나 엄마는 제가 받자마자 유혹을 받아 다 쓸지도 모른다고 무조건 엄마 통장으로 받아야 한대요.”

우리 반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오늘 어머니 만나 뵐 건데, 혹시 부탁드려줬으면 하는 건 없냐’고 묻자 명재(가명)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명재는 중학교 때 따돌림의 설움을 견딘 뒤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절대적인 양보와 헌신으로 교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있을 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등을 쓸어주곤 했다. 다만 나를 포함해 교사들에게는 마음을 잘 열지 않았다. 무언가 힘든 심정이 느껴져 다가가 마음을 물으면 무성의하게 ‘괜찮아요, 선생님은 모르셔도 돼요’라고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런데 이날은 엄마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엄마가 (알바 월급을) 맡았다가 목돈을 만들어주신다는 건 꽤 괜찮은 생각이라서 저도 동의해요. 제가 갖고 있다간 허무하게 다 써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제가 한달 일한 월급이 고스란히 찍힌 제 통장을 보고 싶은 거예요.”

명재는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지. 그 마음을 엄마한테 잘 전달하기는 힘들었니?”

“전달해도 소용없을 게 뻔해요. 워낙 제가 속을 썩여드렸으니 못 믿을 만도 하잖아요.”

“그래도 한번만 믿어달라고 좀 더 설득해보고 싶지는 않아? 너도 너 자신을 유혹으로부터 단련시키면서 잃었던 엄마와의 신뢰 관계도 회복해나가면 좋지 않을까?”

명재는 도리질했다. “아니에요. 3년만 참으면 성인이 되니까 그때까진 제가 포기할래요.”

이날 오후에 만난 명재 어머니와의 상담에서는 주로 말씀을 들었다. 이 시간을 간절히 기다려온 듯 말썽꾸러기 두 아들의 지나온 역사를 풀어내며 어머니는 줄줄 일러바쳤다. 그동안 나는 ‘끄덕끄덕’과 ‘네네’로 맞장구만 쳐드렸다. 그러다가 마무리 시점이 되어서야 겨우 타이밍을 잡아, 명재가 그동안 학교생활을 통해 친구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자세히 말씀드렸다.

지난 초·중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명재에게 가장 마음 놓기 어려운 부분이 친구 관계 능력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기뻐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러더니 “선생님,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라고 한다.

“아, 그래요? 실은 명재가 저한테 좀 까칠해서 절 불편해하는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명재가 그래요. ‘엄마, 우리 샘은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행동 자체를 지적하기보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 감정을 물어봐주셔. 아직은 나 스스로 감정을 잘 표현할 줄 몰라서 자세히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알아? 어때? 누구랑은 참 다르지?’”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명재 말에 뜨끔했단다. “누구라니? 그게 설마 엄마야? 너 엄마 배에 난 칼자국 누구 때문이지 알지? 넌 엄마를 제일 알아줘야지!” 하며 농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표정은 선생님과 비교당해 싫기는커녕 안심하고 고마운 얼굴이었다.

아이에 대한 서운한 마음과 걱정으로 시작해 눈물과 감사로 매듭짓는 어머니들, 서로 충혈된 눈으로 손 맞잡고 헤어지기 싫은 듯 오래도록 문 앞을 서성이는 학부모와 나, 그것이 우리 반 학부모 상담의 가장 흔한 그림이다. 그 힘으로 나는 또 아이들과 흠뻑 사랑에 빠진다. 그야말로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업고 업히는 상담이다.

내 학부모 상담은 초지일관 “어머니, 아버지, 당신 아이는 참 괜찮습니다”이다. 진심이다. 아이들은 이유 없는 분을 품지도, 이유 없는 반항을 하지도 않는다. 반항하는 아이는 더 정직하다. 그 아이들을 통해 교사인 나는 매일매일 성장한다. 가만히 삭이지 않고 드러내는 아이들의 마음의 소리가 나를 더 뜨겁게 폭풍 성장시킨다. 이 부당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내가 학교 안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까슬까슬한 우듬지를 꺾지 않고 따스한 비와 햇살로 품어 보드라운 잎을 열어주는 일, 매일매일 내게 일어나는 기적이다.

▶김선희 교사. 경기도 내 중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25년차 교사이자, 가정과 학교에서 미래의 주역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삐뚤빼뚤 민주주의자다. 단 한 존재도 학교에서 입시 성적으로 매겨진 등급과 서열로 인해 함부로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 당하지 않는 세상을 기도하며 따뜻한 공감의 시선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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