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2 15:59
수정 : 2020.01.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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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린 지난 7일 오전 쌍용차 해고자 46명이 7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본사로 복직 뒤 첫 출근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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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휴직’ 통보 받은 쌍용차 해고자 46명 설문조사 결과 발표
불안장애(69.4%)에 수면장애(86.1%)까지
절반 가까이는 월 평균 소득 200만원 이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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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린 지난 7일 오전 쌍용차 해고자 46명이 7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본사로 복직 뒤 첫 출근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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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이라는 가장의 무능력과 사회의 낙인 등으로 현재 이혼한 상태이며 진정으로 ‘나'는 누구이고, 이곳이 어디인지, 내 삶은 찾을 수 있는지, 어디가 어디인지,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ㄱ씨)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나고 죄 지은 것마냥 얼굴 들기가 어렵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ㄴ씨)
“10년간 죽지 못해 버티다시피 살아왔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ㄷ씨)
“부서 배치를 앞두고 주변 분들에게 인사를 받고 있던 중 받은 통보에 심한 충격을 넘어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ㄹ씨)
“저는 차를 만들고 싶습니다. 합의대로 부서배치를 해주십시오.” (쌍용자동차 해고자 ㅁ씨)
10여년 만에 복직을 앞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46명이 회사의 휴직 명령으로 현장 복귀가 무산된 뒤 정신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9월 쌍용차와 쌍용차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해고노동자), 정부 대표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해고된 노동자 전원의 복직을 합의했으나 지난달 24일 회사는 1월 복직을 앞둔 해고노동자 46명에게 경영 악화를 이유로 휴직을 통보했다.
12일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쌍용차 범대위)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약 90%가 수면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쌍용차 범대위가 해고노동자 46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와 강제휴직을 통보받은 뒤 2주 동안의 상태를 살펴본 실태 조사 결과다. 설문조사에는 이중 36명이 응답했다.
우선 해고노동자 36명 가운데 25명(69.4%)은 지난 1년간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면증을 호소한 사람도 29명(80.6%)이나 됐다. 특히 ‘무기한 휴직을 통보받은 뒤 지난 2주일 동안 충분한 수면을 취한 날이 하루도 없거나’(13명) ‘1~2일밖에 되지 않는다’(18명)고 응답한 사람도 31명(86.1%)으로, 복직 연기가 결정된 이후 이들의 수면 장애가 더 심각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해고노동자 절반 이상(61.1%)은 ‘최근 1년간 2주 이상 연속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많이 슬펐거나 불행하다고 느꼈다’고 응답해,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의 현재 삶이 불안정하다’고 응답한 사람도 33명(91.7%)이나 됐다. 불안정한 심리상태는 약물 복용으로 이어졌다. 응답자의 3명 가운데 1명(33.3%)은 ‘우울증이나 불면증 등으로 인해 약물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정신 건강 악화는 해고 기간 동안의 열악한 생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이들의 월 평균 소득에 대한 질문에 ‘200만원 이하’(44.4%)라고 답한 사람이 16명으로, 절반에 육박했고, ‘300만원 이상’(16.7%)은 6명에 불과했다. 해고 후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대부분이 법정 최저임금(174만5천150원, 2019년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울러 이들 중 24명(70.6%)은 ‘올해 1월 복직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응답해, 무기한 휴직으로 인한 해고노동자 가족의 생계 악화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의 세월은 이들의 건강 상태도 악화시켰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묻는 문항에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1명(2.8%)뿐이었고, 나쁘다는 응답은 13명(36.1%)이었다.
신체·정신 건강이 모두 나쁜 상황임에도 해고노동자들 대부분은 회사의 휴직 명령을 부당하다고 받아들여 앞으로도 계속 투쟁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와 기업노조가 무기한 휴직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 11명(32.4%)은 ‘정부를 압박해 쌍용차 지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으며 9명(26.5%)는 ‘상여금·성과급 반납 등 고통분담에 대한 현장의 불만을 복직자에게 돌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이에 해고노동자 30명(88.2%)는 ‘노노사정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출근투쟁을 하겠다’고 답했다.
이밖에도 해고 노동자들은 가족의 현재 심리상태에 대해 “해고통지서를 받았을 때보다 더 심한 충격을 받았다. 10년 동안 별 말 없던 와이프가 이번에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가족들 모두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애들 엄마와도 떨어져 있어 이혼 직전에 와있다”고 답하는 등 회사의 휴직 명령에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충격을 받았음을 보여줬다.
조사를 진행한 쌍용차 범대위는 “사회적 합의를 파기하는 기업은 용서받을 수 없다”며 “다가오는 설 연휴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11년 만에 복직했다는 기쁜 소식으로 고향을 방문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46명 가운데 31명은 지난 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상황이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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