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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8 16:55 수정 : 2020.01.08 17:1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8일 낮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대화 중 포옹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8일 낮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대화 중 포옹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강덕경 할머니, 김순덕 할머니, 이용녀 할머니, 이영숙 할머니, 박두리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김상희 할머니…

1992년 1월 8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차 수요시위가 열린 지 꼭 28년이 지났습니다. 2020년 1월 8일 제1421차 수요시위가 열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상에 오른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먼저 이 자리를 지키다 떠난 할머니들의 이름을 시민들과 함께 불렀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처음 수요시위를 시작한 뒤 소식을 듣고 5차 집회부터 할머니들이 함께 했습니다. “직접 버스표를 사서 이곳을 찾아온 할머니들에게 어떤 이들은 “부끄러운 짓을, 뭐가 자랑스럽다고 데모를 하느냐?”며 편견과 비웃음 가득한 폭력적인 말들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 거리에 섰던 할머니들은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고 윤 이사장은 회고합니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처음 열린 수요시위에서 10여 명의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제 할머니들의 자리는 비워져 있을 때가 더 많습니다. 이날 유일하게 참가한 이용수 할머니 곁에도 동지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죽는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죽는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죽는다고 진실이 묻혀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외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고, 평화는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1421차 수요시위 현장에 울려펴진 외침처럼, 28년을 지켜온 시민들의 동행은 역사가 바로 쓰일 그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현장의 사진을 모아봅니다.

8일 낮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준비한 수요시위 28주년 기념 케이크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1992년 1월 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실행위원으로 첫 수요시위에 참가했던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오른쪽)는 정의기억연대 운영위원장으로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이용수 할머니가 8일 낮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이용수 할머니가 8일 낮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청소년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아 기자

소녀상 맞은 편, 담장으로 가려진 옛 주한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8일 낮 폴리스라인이 세워져 있다. 서울 종로구는 그간 일본대사관 쪽에 대사관 신축 공사 개시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어 지난해 3월 일본대사관 건축허가를 취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정아 기자

8일 낮 열린 제1421차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그동안 수요시위에 함께 참가한 할머니들의 사진들과 다양한 손팻말을 들어보이며 일본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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