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 촉구 촛불문화제 모습.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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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지휘부 6명 구속영장
김석균 청장 지시로 거짓 회견도
구조 실패 뒤 책임 숨기기 급급
2014년 수사 때 드러난 부실대응
청와대·법무부 외압 탓 용두사미
“해경 지휘라인 구속영장 청구가
컨트롤타워 수사할 초석 될 것”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 촉구 촛불문화제 모습.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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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퇴선명령의 부재’가 꼽힌다. 당시 해경 지휘부 누구도 퇴선명령을 하지 않았고, 세월호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안내방송을 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은 방송 장비를 갖춘 상태였다. 해경은 조타실에서 탈출하는 선원들만 구조했고,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일 오전 8시52분께 단원고 학생 최덕하군의 119신고로 사고 소식이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에 접수됐다. 해양경찰청 본청 상황실은 8시58분에, 서해해양경찰청 상황실은 9시에 사고를 보고받았다. 서해해양경찰청 상황실은 진도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을 통해 세월호 상황을 파악했지만 9시23분에 “선장이 퇴선명령을 할지 말지 알아서 하라”는 취지의 명령을 내렸다. 해경 본청은 오전 9시36분 승객 절반 이상이 배에 갇혀 있다는 김경일 전 123정장의 보고를 받고도 ‘선내에 진입하라’거나 ‘퇴선명령을 내리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수난구호법상 최초의 현장지휘자였던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은 헬기를 타고 직접 현장으로 이동해 구조 지휘를 해야 했지만, 3009함에 머무르며 오전 9시49분까지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구조에 실패한 해경은 책임 숨기기에 급급했다. 해경은 퇴선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해경지휘부의 구조 방기 여론이 일자, 퇴선명령을 수차례 실시했다는 허위 기자회견을 2014년 4월28일에 열었다. 김석균 해경청장은 세월호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서 “이 기자회견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해경 경비안전국(당시 국장 이춘재) 역시 김석균 청장의 지시를 받아 퇴선명령을 했다는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2014년 5월30일)이라는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바 있다. ■ 세월호 특수단, ‘국가의 책임’ 수사하나
해경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과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은 2014년 수사 때도 대부분 확인된 사실이다. 당시 김경일 전 정장만 기소한 검찰 역시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경 지휘부 전반에 대한 수사계획을 세운 바 있다. 2014년 5월29일 검찰이 작성한 수사 보고서에는 ‘해경 본청, 서해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 해경 중앙구조본부, 진도관제센터 등에 근무하는 세월호 사건 신고 접수, 상황 전파, 구조 및 수색 활동 담당 공무원 등’이 예상 피의자로 적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청와대와 법무부 등의 ‘외압’에 의해 용두사미로 끝났다. 2014년 6월 검찰의 해경 본청 등 압수수색 때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전화해 압력을 넣었고, 그해 7월 김경일 전 정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검토 때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를 빼라고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번 구속영장 청구가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을 묻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세월호 티에프(TF) 팀장인 이정일 변호사는 “당시 정부 책임의 핵심은 해경 지휘부와 청와대 컨트롤타워의 초동대응 실패다. 해경 지휘부의 책임 규명이 청와대 컨트롤타워 수사로 나아갈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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