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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4 09:46 수정 : 2020.01.05 10:29

가수 양준일이 제이티비시(JTBC)의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해 무대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불리는 유튜브의 1990년대 음악방송 채널의 인기에 힘입어 양준일은 30년 만에 무대로 다시 소환됐다. <제이티비시> 방송 화면 갈무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 ‘양준일 열풍’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버전
일회성 한계 극복 ‘접근성’ 높여
가수 양준일, 유튜브로 시간 극복

90년대 음악채널 인기 ‘추억 소환’
‘탑골 지디’ 양준일의 가치 발견
제작자 과제 ‘유튜브 순기능 극대화’

가수 양준일이 제이티비시(JTBC)의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해 무대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불리는 유튜브의 1990년대 음악방송 채널의 인기에 힘입어 양준일은 30년 만에 무대로 다시 소환됐다. <제이티비시> 방송 화면 갈무리

최근 유튜브의 <그알>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에스비에스(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개설한 공식 채널인데, 방송 예고편이나 본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 여전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는 과거 방송분 하이라이트 등을 편집해서 올리는 계정이다. 미제 미스터리는 온라인상에서 언제나 인기있는 콘텐츠였으니, 미스터리의 명가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런 계정을 이제서야 운영하는 건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있다 싶었다.

막연하게 그런 마음으로 모니터를 보다가 담당 피디의 말 한마디에 정신이 얼얼해졌다. 신정동 연쇄살인사건과 노들길 살인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한 에피소드를 제작했던 도준우 피디는, 방송 후 4년이 지났음에도 큰 진전이 없는 게 면구스럽다면서도 굳이 유튜브를 통해 그 에피소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혹시라도 영상을 보고 기억이 나는 분이 작은 제보라도 해주실까 봐. (중략) 그 집과 관련된, 혹은 그 사람에 관련된 다른 유형의 제보가 들어와서 크로스체크되면 다른 국면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런 걸 기대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유튜브의 장점이 이런 영상들을 올려놓으면 계속 남는 거잖아요. 몇년 뒤에 누가 또 볼 수도 있고.”

그의 말이 맞다.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 영상은 확실히 다르다.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 에피소드 또한 <에스비에스> 누리집이나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다시 보기가 가능하지만, 에피소드당 3분에서 10분 사이로 편집되어 좀더 격식 없게 유통되는 유튜브 영상의 접근성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다시 보기가 한번 방송되고 나면 흘러가버리는 티브이 본연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달리, 유튜브에서는 수년 전 영상이 뜬금없이 다시 발굴되어 화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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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탑골공원’ 인기 여파

레거시 미디어가 주로 최신 콘텐츠를 소개하며 화제를 만드는 반면,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영상을 추천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종종 7년 전, 8년 전 영상을 꺼내어 추천해주곤 한다. 최신 영상이 화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영상이 먼저 큐레이션 되고 그를 통해 화제를 만드는 유튜브 특유의 구조는 모든 영상을 현재형으로 만든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제작진은 시간의 흐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고, 유튜브 <그알>은 그런 노력의 하나였던 셈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이 알고 싶다>가 수년 전에 다룬 사건을 유튜브 <그알> 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 중 혹시라도 사건과 관련된 유의미한 제보를 해줄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따지고 보면 지난해 말 폭풍 같은 인기를 끌며 한국에 돌아온 양준일 또한 유튜브를 통해 시간을 이겨낸 인물이다. 1991년 데뷔해 잠시 활동하다가 시간 속에 잊힌 인물인 양준일은, 1990년대 음악방송을 연속으로 방영하는 몇몇 유튜브 채널에서 새삼스레 다시 발견됐다. 사정은 이렇다. 에스비에스가 자사가 보유한 유튜브 ‘에스비에스 뮤직’ 채널을 ‘에스비에스 케이팝 클래식’ 채널로 개편하고 과거 <인기가요> 영상을 24시간 연속 스트리밍 서비스하자, 그 시절을 추억하는 지금의 30~40대 사용자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실시간 채팅창에서 저마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좋았던 옛날’을 곱씹는 광경은 채널에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호를 붙여줬고, 이 열풍에 주목한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또한 자사의 데이터베이스를 탈탈 털어 과거 음악방송을 연속 스트리밍하는 채널을 개설했다. 이 채널들에서 그 시절 가수들은 종종 오늘날의 맥락으로 다시 해석되곤 한다. 이를테면 전위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이정현에게 ‘조선의 레이디 가가’라는 별호를 붙여준다거나, 파워풀한 춤솜씨로 댄스곡을 소화하던 젊은 날의 백지영에게 ‘탑골 청하’라는 애칭을 선사하는 식이다.

이정현과 백지영 같은 사례들이 ‘전국민이 다 아는 스타의 젊은 시절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유희’였던 것과 달리, 양준일의 ‘리베카’ 무대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순수한 ‘발견’에 가까웠다. 서태지나 현진영, 이현도보다 한발 앞서 뉴잭스윙 장르를 선보인 양준일은 당시에도 대단한 인기를 끌던 가수는 아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갓 넘어온 20대 청년이 선보이는 춤과 노래는 한국 가요의 자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음악 외적으로 인기를 끌 만한 요소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홉살에 미국 이민을 갔다가 20대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어에 서툴렀고, 한국적인 정서와는 더더욱 거리가 있었다. 방송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던 시절, 가는 몸매에 곱슬기가 도는 장발과 펄럭거리는 오버사이즈 셔츠, 귀걸이 차림의 교포 청년은 환영의 대상이 아니었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이었는데, 호보다는 불호의 여론이 더 컸고, 그 불호를 설득해내기도 전에 방송가에서 추방당했다. 그런 탓에 양준일은 대중의 기억 바깥에 있었다. 그 시절을 목격했던 이들은 양준일을 잊었고, 그랬으니 더 젊은 세대에겐 양준일의 춤과 노래가 전승될 일이 없었다.

서툰 한국어에 오버사이즈 셔츠, 귀걸이 차림의 미국 교포 청년은 1990년대 초반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호불호가 갈렸다. 가수 양준일은 대중의 기억 바깥에 머물렀다. 양준일이 <제이티비시>(JTBC)의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해 활짝 웃고 있다. <제이티비시>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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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의 발견, 현재로 소환

양준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 또한 2000년대 초반 반짝 ‘브이투’(V2)라는 이름의 혼성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가 과거 ‘가나다라마바사’나 ‘댄스 위드 미 아가씨’ 같은 곡을 선보였던 양준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스타에겐 그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나처럼 ‘그때 그런 가수도 있었지’ 하며 무심히 넘어가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양준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사회가 해외 교포들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젠더 규범에 대해 조금은 더 유연해지고, 한국 가요에 영어 가사가 등장해도 그걸 어색하게 여기지 않게 되기까지의 세월. 그리고 1990년대에 유효했던 멋과 유행이 세월이 흘러 다시금 ‘레트로’ 코드로 소비되기 시작하고, 뉴잭스윙과 신스팝이 다시 한번 당대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기까지의 세월. 그 세월이 지나 마침내 양준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2019년, 사람들은 유튜브에 스트리밍되는 1990년대 음악방송 클립에서 ‘탑골 지디’ 양준일을 처음으로 발견해냈다. 30년 전 콘텐츠를 24시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해주는 ‘온라인 탑골공원’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기억 저편에 고립되어 있던 양준일을 발견해 현재로 소환해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유튜브가 마냥 좋은 플랫폼이고, 방송의 가치가 유튜브에서 극대화된다는 식의 유튜브 찬가만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유튜브는 혐오 콘텐츠가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장소 중 하나이며, 거짓선동과 여론조작이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먼저 추천하는 알고리즘은 확증 편향을 부추기고, 그 덕에 사용자들은 제 정파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을 앵무새처럼 반복 제공하는 뉴스 채널들에 힘을 실어주는 중이다.

더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편가르기에 치중하는 채널일수록 더 많은 주목을 받는 이 공간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콘텐츠의 유효기간을 언제나 현재형으로 유지하는 유튜브의 특성이 양준일 열풍을 가능하게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2020년의 콘텐츠 제작자들 앞에 놓인 도전과제가 있다면, 아마도 유튜브의 부작용을 줄이고 그 순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닐까? “이런 영상들을 올려놓으면 계속 남는” 유튜브의 특성을 믿고 “몇년 뒤에 누가 또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꾸준히 미제사건 파일을 정리해 채널에 올리는 <그알> 채널처럼.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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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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