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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엄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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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키워드로 사회붕괴를 짚어낸 사회학자 엄기호씨…
‘세월호 이후 세대’ 위한 사회 재건에 대하여
고통의 시간이 벌써 3주째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 4월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제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진전이나 수습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을 우리 사회에 계속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끝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심연의 거울에서 자신의 추악한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 고통은 전국적이긴 하지만 세대마다 지역마다 달리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는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가졌던 사회적 자부심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정신적 공황에 빠져들고 있고, 이 사건의 가장 큰 당사자인 10대 청소년들은 사회·국가에 대한 큰 불신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회가 아닌 상태의 사회
과장된 표현으로 ‘사회 붕괴’의 상황에 이르게 되자, 우리에게 ‘사회’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게 됩니다. 오랫동안 청년세대와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해왔고, 최근 <단속사회>라는 책을 펴내 한국 사회의 내면적 붕괴 현상을 짚어낸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가 ‘사회가 아닌 상태의 사회’에 접어들었으며,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지만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개입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고 많은 분들이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을 써요.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때 갖게 되는 최소한의 감정이 ‘보호받고 있다’는 거예요. 어느 범위인가는 사회마다 다르죠. 좋은 사회라면 모두를 다 보호해주는 거죠. 그 최소치가 청소년, 아이라는 존재예요. 아무리 엉망으로 굴러가는 사회도 여기는 최소한의 보호 대상인 거죠. 그런데 그게 완전히 무너져내리니까, 당연하게 ‘이게 사회냐? 우린 도대체 뭐하는 것이냐?’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침몰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아요.
행정체계가 어쩌면 저렇게 체계적이지 않을까, 사회학을 공부하는 저도 보면서 이게 뭐냐는 소리가 절로 나와요. 이해할 수도 없는 사건이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사건이라, 이후 수습 과정에서 잠정적인 수준에서 대책이라고 내놓는다면 그게 더 비참할 거 같아요. 그것 말고도 근본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게 있어요. 고통의 문제, 즉 고통과 고통을 듣는 시스템인데요. 사실 관료제와 같은 행정체계는 인간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사회의 큰 활동축인데, 이게 근본에서 붕괴됐다는 느낌이죠. 단순히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붕괴된 거라면 앞으로 고치면 되는데, 우리가 지금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는 건, 그 근본에서 고통과 고통을 듣는 사람들 또는 시스템 사이의 소통 문제, 이게 완전히 망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어떻게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저럴 수 있을까, 거기서 무력감이 들면서 더 이상 우리는 안 될 거 같다는 좌절감이 깔렸어요. 특히 지금 청소년들이 어른들은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도 자기네들도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워요
책임 시스템에서 면피 시스템이 작동
-그나마 상식 수준에서의 대응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모두 붕괴됐다는 게 충격이에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생겨난 황당한 것 중 하나가,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면서 면피 시스템을 만든 거예요. 책임을 진다는 게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걸 내가 어떻게 책임지고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쫓겨난다는 뜻이 된 거죠. 그래서 아무도 책임을 안 지려 하는 거고, 못 지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거죠. 사실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란 건 그 위험이 윗선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과장 직급에서 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와 한계가 설정돼 있고 그것을 넘어가면 빨리 차장, 부장의 권한으로 넘어가는 게 관료제 시스템이죠. 더 큰 위험은 위로 가야 하고 위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은 오히려 위험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거잖아요. 무슨 일이 벌어지면 위험, 곧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요. 그러다보니 밑에 있는 사람들은 면피하는 방식으로 일을 도모할 수밖에 없죠. 이번에도 대통령이 자신은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오히려 다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까 안 움직이는 거죠.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면피 시스템인 거죠.
-이번 사건에서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많이 지적됐어요.
평상시의 책임 시스템이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다면 전시나 재난이나 위기시엔 어떤 체계의 특정 지점에 무한대의 권한을 부여해줘야 해요. 9·11 테러 당시 현장 책임자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지고 전적으로 그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잖아요. 배가 파손된 상황이면 선장에게 모든 권한이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선장은 권한이 없고 회사 눈치를 봤다는 거고, 해경 역시 비용을 누가 내느냐 하는 문제로 시간을 끌다가 결정적인 시간을 다 놓쳤다는 건데, 이게 정말 황당한 거죠. 결국 재난이나 위기에서 대응 권한의 소재 문제가 면피 시스템과 결합되니까, 긴박한 순간에 정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 거죠. 그럼 그 위에서라도 돈 문제나 부차적인 것은 나중에 처리하자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결국 사람들이 허망하게 죽어나가는 거죠.
-예전에도 큰 재난은 있었어요. 그러나 사고가 수습되면 예방 대책을 세워보자 이랬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있어요.
예전 사건들은 제한적인 영역에서 제한적 무능과 제한적 잔인함을 보여줬기에 이것만 고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번에는 한국 사회의 완전한 민낯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충격이 있어요. 우리가 속한 이 사회와 국가가 얼마나 무능하고 잔인한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다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이 큰 거죠. 무능하기만 하면 문제가 아닌데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걸 바라보는 우리는 통제할 만한 어떤 권력이나 힘, 이런 게 얼마나 없는지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죠. 정치나 행정, 권력이 아무리 얘길 해봤자 듣지 않잖아요.
변화도 반영도 없다는 사회적 무력감
-그런 의미에서 지금 국민이 느끼는 것 중에 슬픔과 죄책감 외에도 사회적인 무력감이 있어요.
사회적 무력감은 2008년 촛불시위 사건 이후 쭉 축적돼온 거 같아요. 촛불시위 때 수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어요. 그러나 그 결과는 말로 정치에 개입해 통제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능해져버렸는지를 사람들이 느끼게 된 거죠. 아무리 난리를 해도 권력이 안 듣는다는 것, 변화도 반영도 없다는 것에서 오는 무력감이 있어요. 정치는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듣고 뭔가를 해내는 건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구조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느낌인 거죠. 말 자체가 완전히 조롱거리 또는 냉소의 대상이 돼버렸어요. 정치와 국민의 관계뿐이 아니에요. 내가 고통스럽다고 말해도 그 언어가 저쪽으로 가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는 느낌은 국민 사이에서도 분열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죠. 사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듣고 공감할 줄 아는 것인데, IMF 이후 한국 사회는 철저히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체제로 지내왔어요. 남을 돌봐선 안 되는, 오히려 돌보면 같이 탈락하기에 그걸 외면하는 것만 훈련된 거죠.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로 크겠지요.
정말 가슴 아픈 게 산업화 세대건 민주화 세대건 그동안 어떤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건데 그게 다 깨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의 공허함, 상실감이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생겨난 가장 큰 것이 불신이에요. 아무도 안 믿게 됐다는 것이 이후 역사에서 엄청난 후폭풍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직감이 들어요. 누가 무엇을 믿겠어요. 이제 각자도생하는 거죠. 두 번째는 재난의 계급화예요. 그동안 우리 모두는 ‘위험’에 대해 마치 사회 구성원 전부가 겪는 일인 것처럼 말해왔고 대처해왔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죠. 이 사건을 보면서 ‘강남 아이들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감히 이렇게 말 못하는 거죠. 이 두 가지가 겹치면 이제 한국 사회는 권력과 돈을 가진 아이들만 각자도생에 성공하는 사회라는 결론이 나오게 돼요. 각자도생하는 사회에서 누가 못 살아남고 누가 살아남느냐, 이것도 너무 명백한 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리고 그건 이미 ‘사회’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그 상황의 도래를 저지해야 하는 거예요.
견뎌야 하는 걸 견뎌야 하는 것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와 아직도 갇혀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차마 말로 뱉어내지는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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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엄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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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강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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