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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6 20:09 수정 : 2019.12.17 02:36

지난 8일 오후 서울 충무로 레인보우 스페이스에서 열린 ‘두뇌과학 이론을 활용한 베트남어 교육’ 발표회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시안 프렌즈 제공

다문화 아이들에게 모국어 교육
말 익히며 자신의 뿌리 찾아
엄마·아이 유대감도 더 커져

한국-아시아 국가 교류 급증
아이들의 이중언어 역할 기대

지난 8일 오후 서울 충무로 레인보우 스페이스에서 열린 ‘두뇌과학 이론을 활용한 베트남어 교육’ 발표회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시안 프렌즈 제공

지난 8일 오후 서울 충무로 레인보우 스페이스에서는 다문화가정 엄마와 아이들의 잔치가 열렸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의 아이들이 아직은 서투르지만 자신에 찬 목소리로 베트남어로 자기소개를 하거나 동요를 불렀다. 엄마들도 대견한 듯 앞에서 아이들의 재롱에 박수를 보냈다. 엄마들은 “아이가 반년도 안 돼 이렇게 베트남 말을 잘할 줄은 몰랐다”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이남숙 ‘아시안 프렌즈’ 이사장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난 6월부터 반년간 벌여온 다문화가정 자녀 모국어 교육 사업의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베트남어를 전혀 못하거나 이름 정도 얘기하던 게 고작이었는데, 이젠 아이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정도가 된 걸 보니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이런 아이들이 더 배울 기회를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한국어학 박사인 도 옥 루이엔(호찌민대 교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시안 프렌즈와 함께 사업을 구상했고, 부이티 튀 꾸잉, 전 티 쑤엔과 함께 11가구 자녀 17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베트남어 교육을 직접 이끌었다. 서울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어 연세대 박사 과정에 들어가 2015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베트남의 호찌민대에서 교수에 임용됐으나, 현재는 잠시 쉬면서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교육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두 나라를 잘 아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자신의 한국어 교수법 이론도 실천하려는 셈이다. 베트남 아이들을 위한 장학회도 만들어 아이들을 장래를 지원하고 있다.

루이엔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베트남 출신 엄마와 아이들은 서울과 경기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엄마가 한국 사람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온 탓이다. 엄마는 베트남인이지만 아빠는 한국인이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나서 컸기 때문에 한국어는 모국어로 익숙하게 하지만 베트남어는 서툰 경우가 많다. 엄마들이 한국에서 낳았는데 베트남어가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더라도 언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이는 한국어가 능숙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아 소통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교육은 매주 한차례 집으로 직접 찾아가 하는 방문 교육과 한달에 한번 엄마와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교육으로 진행했다. 루이엔은 아이들이 12살 이전에 언어를 배워야 쉽고 빠르게 배우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주로 유치원 갈 나이의 어린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모았고 놀이나 노래, 동화로 베트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어린이를 만나는 그의 자세는 항상 어린이의 키에 맞춰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 본다. 노래를 통해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는 말 익히기, 신체에 관한 말들, 색깔, 숫자 등 기본적인 말과 친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놀이터에 가서 놀기, 시장에 가기, 놀이공원 가기 등으로 활동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간다. 아이들이 지치거나 흥미를 잃으면 효과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 흥미를 유발하는 쪽으로 아이들을 이끈다. “시장에 가면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사달라는 말을 하게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말을 빨리 배우는 것은 당연해요.”

도 옥 루이엔(오른쪽)이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베트남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아시안 프렌즈 제공

그리고 1주일에 한번 하는 방문 교육으로는 한계가 너무 커서 매주 주제를 정해서 집에서 지속해서 말을 익히도록 숙제를 내준다. 이 교육은 아이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들에게도 똑같이 한다. 엄마들에게는 이런 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고, 교육하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아울러 알려준다. 앞으로는 엄마들이 강사 노릇을 하도록 하려는 게 그의 속셈이다. “이제 시작이라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프로그램을 몇년만 지속하면 저와 같은 수많은 강사를 배출하게 되는 거죠.”

루이엔과 함께 이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전 티 쑤엔은 결혼해서 한국에 온 지 4년이 됐다. 아이는 네살이고 어린이집에 다닌다. 그는 다른 베트남 엄마들과 달리 아이에게 베트남어는 물론 영어도 가르치고 있다. 아이 교육에 욕심이 많은 듯하다. 그는 이런 경험을 가지고 한국에 온 베트남 엄마들에게 아이 양육에 대해 상담을 해주고 있다. 그는 “아이라 쉽게 언어를 배울 수 있고, 두 나라의 교류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아이가 컸을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6개월이 흘러 프로그램은 종착역에 도착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기초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엄마와 아이가 이 프로그램 덕에 더 친해졌다는 것도 큰 소득이다. 아이들의 엄마가 베트남 원어민이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방법도 깨쳤기 때문에 아이들이 베트남어를 배우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루이엔은 “예전 같으면 아이들이 베트남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가족과 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고, 결국은 자신의 뿌리를 잊게 될 수도 있었다”며 “앞으로 대화가 많아지면서 가족의 끈끈한 정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고 미래를 예상했다.

그는 최근 충남 천안에 생긴 원오사라는 베트남 절에도 남다른 애정이 있다. 베트남 사람 상당수가 불교도인데 한국에 온 이들에게 큰 도량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절은 베트남인들의 모금으로 빛을 봤는데, 이미 베트남인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보여준 셈이다. 이 절은 종교적 모임의 장소를 넘어서 문화센터, 교육센터 구실까지 할 예정이다. “한국에 베트남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시간이 나면 하릴없이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로 낭비하는 일이 잦았다. 절이 만들어진 이후 주말에는 수천명이 모이는 등 베트남인들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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