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2.02 19:20 수정 : 2006.02.02 19:28

서울 서빙고동에 사는 최아무개씨가 지난달 26일 아침 서울역에서 의정부로 가는 지하철 1호선 전동차에서 시민들이 보고 선반 위에 버리고 간 신문들을 주우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하철에서 무가지 줍는 할아버지·할머니들

주름이 팬 손은 쉴 틈이 없다. 아침 6시30분부터 유아무개(84)씨는 지하철 1호선 선반 위를 훑으며 승객들이 놓고 간 무가지와 신문지를 줍는다. 7시가 되면 이미 1호선 서울역은 출근 인파로 몸조차 움직이기 쉽지 ?榜? 승객들 틈바구니를 뚫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그렇게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을 오가는 3시간 동안 유씨는 자리에 앉는 법이 없다.

오전 11시, 유씨는 집 근처인 부천 중동역으로 돌아온다. 폐신문지를 가득 담은 30㎏짜리 마대자루는 팔순 노구가 지고 나르기엔 벅차기만 하다. 하루에 모은 세 자루를 옮기는 데만 30분, 쉬어가며 해도 마지막 자루를 나르고 나면 진이 빠진다.

오후엔 6시간 상자 모아 2800원

유씨가 이렇게 온종일 모으는 폐지는 1㎏에 80원을 받는다. 하루 90㎏을 모으면 7200원을 손에 쥔다. 아침 내내 지하철 폐지를 모은 뒤, 유씨는 다시 오후 6시까지 거리에서 종이상자를 줍는다. 하루에 모으는 상자는 50㎏ 정도. 상자값은 신문의 절반이어서 1㎏에 40원이다. 그렇게 하루 11시간 종이를 모아 1만원을 번다.

2002년부터 무가지가 등장하면서, 유씨처럼 버린 무가지를 줍는 노인들이 지하철로 몰리고 있다. 다른 돈벌이 수단이 없는 60대와 70대, 심지어 80대 노인들까지 폐지 줍기에 나서는 것이다. 6~7종의 무가지가 하루 300만부 이상 뿌려지는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 노선에서는 용산역~청량리역 구간에만 수백명이 폐지를 줍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로3가역 역무원 장세봉씨는 “무가지 줍는 노인들이 2년 전보다 몇 배는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폐지수집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만 65살 이상이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자본이나 기술도 필요없다. 키가 작은 이들은 갈고리로 선반 위를 훑기도 한다. 유씨는 사업에 실패한 두 아들과 연락이 끊긴 뒤, 위암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부인(71)과 월세 25만원짜리 단칸방에 산다. “나라에서 한 달에 30만원을 주는데, 그걸로는 월세에다 공과금을 내기에도 모자라”서 이 일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고 그래서 더 벌이도 팍팍하다. 경쟁자가 늘어날수록 폐지 값은 떨어진다. 2년째 무가지를 줍는 서아무개(80)씨는 “2004년에는 ㎏에 110원이었는데 이젠 80~95원밖에 안된다”며 “처음에는 이 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도 건넸지만 요즘엔 분위기가 삭막하다”고 말했다. 간혹 전동차에서 폐지 자루를 잃어버리거나 종종 승객들과 부딪혀 시비가 생기는 것도 고충이다.

1호선 구간에만 수백명


노인들은 보통 집 근처 고물상에 폐지를 넘긴다. 하지만 폐지 값이 떨어지면서 한푼이라도 후하게 쳐주는 곳을 찾아 멀리 가는 이들도 많다. 최아무개(66·서울 용산구 서빙고동·?5c사진)씨는 자기 키보다 큰 자루에 폐지 100㎏을 눌러 담아 인천까지 가서 넘긴다. “이 일말고는 내 나이에 할 일이 없어. 10원이라도 더 받으려면 멀어도 가야지 ….”

이본영 전진식 기자 ebon@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