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22 19:13
수정 : 2006.01.2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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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건강검진 수진자가 서울대병원 강남검진센터에서 컴퓨터단층(시티) 촬영기를 이용해 진단을 받고 있다. 최고 수백만원대에 이르는 이 종합검진은 먹고 살기에 바쁜 가난한 사람들에겐 엄두를 내기 힘든 ‘사치품’같은 것이다. 서울대병원 강남검진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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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치료비 감당 못할 형편 ↔ 장씨, 월 400만원이상 고소득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⑤ 의료 이용의 양극화
유방암 치사율 3배 이상 차이…암 발생위험 1.65배
월 수입 50만원 “경제적 이유 치료 중단” 27%
인천시 서구 마전동의 김아무개(36·여)씨는 2003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한차례 140만원하는 항암치료를 여덟 차례나 받았다. 하지만 이후 가난한 살림에 치료비를 더는 감당하기 힘들어 ‘괜찮으려느니’하며 치료를 끝냈다가 최근 암이 재발됐다.
같은 유방암 환자인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장아무개(36)씨는 2004년초 암 판정을 받은 뒤 3차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 등을 받았다. 그는 암 세포의 전이를 확인하는 검사를 지금도 꾸준히 받는다. 월수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인 장씨는 “만 2년이 됐지만 아직 재발은 없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병원 문턱이 높다.” 건강보험공단의 경제적 수준별 의료 이용량 분석 결과는 이런 사실을 통계적으로 증명해 준다.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를 보험료 수준으로 20등분해 2004년 총 진료비를 비교한 결과, 최상위층이 최하위층에 비해 진료비를 1.72배 가량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오는 등 의료이용량의 계층별 격차가 뚜렷이 확인됐다. 즉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는 집단, 즉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단이 대체적으로 의료서비스를 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분석에서 주의할 점은 최하위층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정부에서 의료비를 지원받는 의료급여 대상자 등 최극빈층은 아니라 보험료를 가장 적게 내는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란 사실이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자료를 보면,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한 경험이 있는 가구 비율은 200만원 이상 수입에서는 4.6%인데 견줘, 50만원 수입은 26.9%, 100만원 수입은 15.5%나 됐다. 이는 최저생계비나 학력 수준을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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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서울 상도동 동작구 보건소에서 한 주민이 동작안경사회가 무료로 나눠주는 돋보기를 받기 위해 검안경을 쓰고 시력을 측정하고 있다.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보건소는 의료장비가 낡아 실효성있는 진료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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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 대한 분석에서도 이런 의료이용의 불평등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3년 건보 직장 가입자를 대상으로 3차병원의 이용률을 살펴보니,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이용률 격차는 두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3차병원의 높은 본인 부담으로 인해 저소득층의 접근이 제한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결과다.
따지고 보면 암과 같은 중증질환은 저소득층이 더 많이 걸린다. 2005년 1월 발표된 건보공단의 ‘소득 계층별 암 불평등 연구’ 결과를 보면 소득 수준과 암 사망의 관련성이 잘 드러난다. 이 연구에서는 소득에 따라 5등급으로 분류해,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이 가장 높은 계층보다 암 발생 위험이 남성은 1.65배, 여성은 1.4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폐암이나 간암의 경우 남성은 최하위층이 최상위층보다 각각 1.75배, 2.32배 많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망의 차이로도 이어져,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은 가장 높은 계층보다 인구 10만명당 남성은 131.7명, 여성은 58.5명이 더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경우 의료급여 계층이 유방암에 걸리면 최상위층보다 치명율이 3배 이상 높아졌다. 다른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래 생존하면서 진료비가 많이 드는 병에 걸렸을 때, 경제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저소득층 또는 빈곤층에서 암 등 여러 질환에 더 잘 걸리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다”며 “병에도 더 잘 걸리고 치료도 덜 받는 저소득층의 건강이 더 불량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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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새 의료 이용량 격차 4배 벌어져
의료이용량의 양극화의 증거는 이진석 충북대 의대 교수의 또 다른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이 교수가 최근 <한겨레>의 의뢰를 받아 도시근로자 가구를 소득에 따라 10등분으로 나눠 보건의료서비스 소비지출액을 비교한 결과,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량은 지난 97년 1/4분기에서 2005년 1/4분기 사이에 43% 줄어든 반면 고소득층의 의료 이용량은 같은 기간에 되려 21% 늘어났다. 이에 따라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의료이용량 격차는 두배 정도에서 무려 4배로 늘었다. 지난 98년 3/4분기와 2005년 3/4분기를 비교한 결과에서는 저소득층도 8%의 의료이용량이 증가했으나, 그 증가 폭은 고소득층의 44% 증가에 비해 매우 낮았다. 여기서 저소득층은 도시근로자 가구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최극빈층은 아니다. 극빈층의 경우 정부에서 의료비를 지원받기에 의료이용 행태가 일반 계층과 조금 달라 고소득층과의 비교가 적절치 않다.
이원영(중앙대 의대)·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 등의 ‘도시 가계의 소득계층별 과부담 의료비 실태’ 연구를 보면, 최근 5년동안 최하위 소득계층에서 과부담 의료비(가계소득 대비 의료비가 10~30% 수준 이상)지출가구의 발생이 고소득층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의료비 때문에 가계 소득 규모가 최저 생계비 이하로 떨어진 가구가 전체 가구의 3%, 즉 41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 연구도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이 줄면 ‘아파도 참는다’는 식으로 보건의료서비스 지출을 우선적으로 줄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의료 이용의 양극화는 본디 소득의 양극화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사실 실업 등으로 인해 소득이 떨어진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은 빈곤 자체로 인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건강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례에서 보듯 노동조건 자체가 이들에게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나빠진 건강은 이들을 더욱 더 빈곤을 가속화해 건강을 더 악화시키는 등 악순환의 고리에 들도록 만든다. 이렇듯 소득의 양극화는 의료이용의 양극화로, 나아가 결국 건강양극화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보험의 보장성의 취약, 공공의료체계의 미확충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의 약화도 의료양극화의 또 다른 주요 요인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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