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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0 19:29 수정 : 2006.01.20 19:36

유럽식 ‘사회협약’ 모델 싹 틔울까


사회협약의 전통을 세워 사회·경제적 현안을 풀어간다.

노동계·경제계·시민단체·종교계·학계를 망라하는 20여개 단체와 정부가 함께 해법을 찾아가는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가 26일 공식 출범한다. 정부 관계자는 “우선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로 출발하되, 논의과정에서 참여 주체간 신뢰가 형성되면 범국민적 협의체로 발전시켜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극화 해결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구축, 국민연금 개혁, 재정확충 방안 등으로 논의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여개 단체·정부 참여…신뢰 쌓기 관심
사회·경제 난제 푸루 범국민 협의체 목표
대표성 부족·시각차 등 앞길 험난 예고

배경과 전망= 연석회의는 스웨덴 등 유럽사회에서 사회·경제적 난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도입한 사회협약을 모델로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갈등 해결 방안으로 거론해온 방안이다. 애초 연석회의는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 추진됐다. 그러나 이 제안이 정치권에서 ‘정계개편 시도’ 등으로 해석되며 논란을 일으키자, 구체적인 의제를 정해 출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연석회의가 어떤 성과를 내놓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정부 관계자는 “타협과 합의의 경험이 부족한 우리사회에서 연석회의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참여연대, 민중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마련한 것을 두고, “정부가 연석회의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것 아니냐”며 연석회의 불참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국민 대표성의 부족도 논란거리다. 북유럽의 사회협약들은 노조조직률이 50%가 넘는 환경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0% 수준에 그치고 있고, 시민단체의 국민 대표성도 허약한 편이다. 연석회의의 논의결과에 대한 국민적 합의 수준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의제= 정부대표와 각 분야 전문가, 경제·노동·시민단체 대표 등 13명으로 구성된 실무협의회는 지난달부터 각 참여단체들의 제안을 토대로 의제 선정작업을 벌여왔다. 실무협의회는 우선 2개 이상의 단체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한 의제 28개를 추려냈으며, 출범 전까지 이를 10개의 의제로 압축할 계획이다.


정부쪽은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참여 주체들의 이해관계 충돌이 비교적 적은 사안이어서, 큰 마찰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과제로 들어가면 시민단체와 경제계 사이에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 향후 조율 과정이 주목된다.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대체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보육시설 확충, 임신·출산 지원 등 복지시스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아이를 마음놓고 낳을 수 있는 사회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출산이 여성의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점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단체 김기선미 정책국장은 “다자녀 가정에 아파트입주 우선권을 주는 식의 출산장려책은 역차별”이라며 “이 보다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계는 시민단체의 복지재정 확대 주장에 비판적이다. 여성의 사회활동 보장방안 강화 등을 통해 개인소득을 늘려,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풍토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 대책에 대해서도 개인연금 활성화, 노인 일자리 확충 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중앙회 소한섭 팀장은 “직접적인 재정확대를 통한 복지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기업의 경쟁력도 살리면서 개인소득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스웨덴·네덜란드 등 강소국…노·사 협약 통해 경제 도약

26일 출범할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의 모델인 유럽의 사회협약은 사회의 책임있는 주체들간의 대화와 타협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스웨덴은 1930년대 전투적인 노동쟁의로 널리 알려졌다. 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되자, 사민당 정부의 중재로 노·사가 1938년 잘츠요바덴 협약을 만들어낸다. 이 협약에서 노조는 파업 자제와 국유화 주장 포기를 내놓고, 경제계는 일자리 보장과 복지 재원 협력 등을 약속하게 된다. 이를 통해 스웨덴의 재벌가인 발렌베리 가문은 특혜적 기업지배를 보장받는 대신 일자리 창출 및 기술투자 등으로 경제위기 극복의 터전을 마련한다. 타협과 사회협약이라는 이 협약의 정신은 이후 스웨덴 노·사관계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네덜란드도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석유위기, 경기침체, 재정적자 확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자,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맺어 경제 회복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 협약에서는 노동계의 임금인상 자제와 사용자의 고용보장 약속이 교환된다. 1990년대 초반 다시 고율의 임금인상과 사회보장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네덜란드 노·사는 1993년 ‘새로운 길’이라는 협약을 체결해 노사 협의체제를 확고히 다진다.

아일랜드에서는 1987년 임금인상 자제, 세금감면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가재건협약(PNR)이 맺어졌다. 아일랜드 노사는 이후 6차례에 걸쳐 후속협약을 맺으면서, 1986년 0.4%의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던 경제를 1995∼2002년 연평균 8.8%의 성장으로 이끌어낸다.

박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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