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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6 19:45 수정 : 2006.05.11 10:04

앞못보신 할머니 품에 길수가 지난 2003년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거의 앞이 보이지 않던 할머니는 길수를 돌보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아이들사회가키우자] 벼랑끝 아이들, 손놓은 정부


취재과정에서 만난 현장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제도가 체계화되지 않았고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뒤처지고 있다”며 정부의 더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우선 현재의 인프라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빈곤지역의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공부방’ 가운데 절반가량인 800곳(2006년부터 902곳)만이 법정 지역아동센터 기준을 충족해 월 200만원의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이 정도의 운영비 지원으로는 아이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게 아동센터 운영자들의 하소연이다.

찔끔 예산에 지원단체 활동 역부족
청와대 주도로 시스템 정비 서둘러야

우리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한 지역아동센터 운영자는 “특히 소년소녀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아이들에게는 공부방에서는 할 수 없는, 더욱 심화된 도움이 필요하지만 인력 문제와 재정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지역아동센터에서 필요한 가정에 교사를 2인1조로 파견해 가사를 도와주고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를 안정시켜주는 사업을 벌이고 싶지만 현재의 재정과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운영자는 “담당 공무원과 공부방 실무자들이 함께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들의 욕구조사를 하는, 찾아가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이런 일을 해내려면 행정기관과 지역아동센터의 기능과 인력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기관의 경우, 동사무소에 사회복지사가 한 명도 배치되지 않거나 현장을 알 만하면 교체되고 마는 일도 허다한 실정이다.

각각의 기관·단체에 대한 지원 확대와 더불어, 흩어져 있는 지원기관·단체를 하나로 묶어내는 네트워크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한 지역아동센터 운영자는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를 해주기 위해 일일이 병원을 물색해야 하고 후원자를 찾아 연결시켜줘야 한다”며 “의료·교육·문화적 지원을 위한 일목요연한 매뉴얼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혜련 숭실대 교수(사회사업학)는 “다양한 기관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동 1인당 복지비 지출 비교
이처럼 문제는 산적해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역량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가 마련한 빈곤아동·청소년 종합대책은 범정부 차원에서 아동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지만, 대부분 중장기적인 계획인데다 재원 마련, 부처간 업무조정 측면에서 해결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어린이 관련 업무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법무부 등으로 분산돼있고 상당수 복지 관련 업무권한이 지방정부에 위임되고 있다. 지난해 아동복지법 개정에 따라 국무총리실 산하에 아동정책조정위원회가 신설됐지만, 정책조정권을 뒷받침하는 예산권 등 실질적 권한은 부족한 상태다. 또 지방정부의 자치역량 차이에 따른 지역간 복지의 불균형 현상도 우려되고 있다.

예산면에서도 우리나라의 어린이 한명당 복지비 지출은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그래프 참조). 정익중 덕성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아동복지 예산이 전체 정부 예산의 0.08%, 보건복지부 예산의 1.2%에 불과할 정도로 정부의 개입은 여전히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예산 확보와 부처간 업무조정기능 강화 등을 통해 정부 대책의 실천력을 높이려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 사회적 관심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주도로 각계각층이 참여해 ‘어린이 우선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특수목적세나 부담금 신설 등 재원 마련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돌보지않는 ‘친권’ 제한해야

“내자식 내가 키우겠다는데”…보호조처 어려워

서울에 사는 영희(가명, 11살), 준영(가명, 9살), 준서(가명, 7살) 3남매는 엄마가 3년 전 집을 나간 뒤 아빠와 같이 살았다. 하지만 아빠는 노숙자 등과 어울려 집에서 술만 마셨을 뿐, 아이들은 사실상 방치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1주일에 절반도 나가지 않았다.

해당 동사무소는 아동 방임이 심각하다고 보고,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시설에라도 보낼 것을 수차례 권유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번번히 “내 자식 내가 키우겠다는데 무슨 소리냐?”고 거절했다. 결국 동사무소는 지역 아동복지센터와 상의 끝에 지난 9월 아이들을 아동양육시설에 우선 입소시킨 뒤, 아버지를 설득해 겨우 동의를 받아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동의를 받기까지 아이들은 3년 가까이 사실상 방치됐다.

경수(가명, 중1)는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난 8월부터 지방에서 일하면서, 한달에 한번밖에 집에 들르지 않는다. 사용료를 못내 도시가스가 끊겼고 겨울이 닥치면서 방은 맨발로 딛기 힘들만큼 차가웠다. 보다 못한 동사무소에서는 지난달 후원금으로 가스를 연결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자는 “어린 아이의 장래를 위해 혼자 두면 안된다”며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무슨 상관이냐”는 답만 돌아왔다.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아이를 학대하고 돌보지 않는데도 부모로서의 권리인 ‘친권’이 유지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동복지법 제12조는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아동의 친권자가 그 친권을 남용하거나 현저한 비행 기타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 아동의 복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법원에 친권행사의 제한 또는 친권상실의 선고를 청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규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법원에 친권행사 제한 등을 청구한 사례는 실제로 단 한건도 없다. 이는 혈연주의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가 부모의 친권을 섣불리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선 아동보호기관들은 방임되거나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친권을 신속하게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방성철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홍보팀장은 “자치단체가 아니라 일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이 법원에 친권 행사의 제한이나 친권상실의 선고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주위에 보살피는 어른이 없거나 위기에 빠진 어린이가 있으면, 〈한겨레〉로 알려주십시오. 또 이런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분들은 정부나 이웃으로부터 어떤 도움이 더 필요한 지 알려주십시오. 정책에 대한 제안도 환영합니다. 접수된 내용은 관계기관에 전달하는 한편, 후속 기사 준비에 소중하게 활용하겠습니다.

한겨레신문사 편집국 어린이 특별취재팀 박용현 최종훈 김순배 김태형 기자

이메일 주소:chil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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