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4 05:00
수정 : 2018.05.04 11:11
‘기본소득 설계’ 올리 캉가스 핀란드 사회보장국 국장
기본소득 부정적 결론 없는데
내년 선거 눈치보는 정부 때문에
효용 검증 기회조차 막혀 실망
국가 수준 첫 실험 제대로 못해
핀란드서도 기본소득 여론 혼재
수당 묶은 ‘유니버설 크레디트’ 등
정치적 부담 적은 실험 할 수도
“현재 핀란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사회복지체계의 전면적 개혁이다. 내년 4월 치르는 총선 결과 선출될 다음 정부의 성향에 따라 새로운 실험이 진행될 것이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의 올리 캉가스 국장(
사진·정부 및 지역사회 담당 이사)은 3일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캉가스 국장 설명을 들으면 최근 일부 국내외 언론의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실패’ 보도는 오보에 가깝다. 핀란드 정부가 결정한 것은 올해 말에 끝나는 현재의 기본소득 실험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 및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캉가스 국장은 이런 결정에 대해 “물론 정부가 우리의 제안대로 기본소득 실험을 확대해 연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추가실험 중단 이유에 대해 “일단 진행 중인 실험의 결과를 봐야 한다는 정부의 판단이 있었다. 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부의 제안이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현 정부가 물러나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핀란드는 ‘의원내각제형 이원집정부제’다. 총선 결과에 따라 의회 다수당이 내각이 된다. 캉가스 국장의 설명은 결국 핀란드 정부의 추가실험 중단 결정이 기본소득 자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분히 논란을 피하려는 현 정부의 ‘정치적 계산’ 탓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때문에 기본소득의 효용에 대해 검증할 기회를 놓치게 됐다고 강조했다.
캉가스 국장은 “각종 복지제도는 크게 보편적이면서 무조건적이거나, 목표지향적이면서 조건부인 경우로 나뉜다. 핀란드의 경우 전반적인 사회정책, 특히 기초사회보장제의 변화가 진행 중인데 현 정부는 고용률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본소득이 고용률을 높일 수단인지, 아니면 더 조건부 제도가 효과가 있을지를 알아보고자 했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정부는 제대로 된 실험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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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 있는 핀란드 사회보장국 사무실. 헬싱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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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비영리 연구기관인 랩2050의 이원재 대표는 “최근 국내 언론은 기본소득이 실패했다는 걸 넘어 ‘복지가 실패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핀란드의 실험은 맥락이 다르다. 직장을 구할 때까지 실업자에게 무기한 지급해온 실업부조 제도가 실업률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이를 대체해보려는 것이다. 한국은 핀란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회보장이 약한 나라인 만큼, 기본소득과 유사하게 ‘조건을 달지 않는’ 기초연금이나 청년수당, 아동수당 등의 복지제도 확대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핀란드 내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 논란이 있다. 캉가스 국장은 “이 실험에 대한 핀란드 내부 여론은 혼재돼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2016년 8월 정부의 관련 법률안 제출 직후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그는 “어떤 이들은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는 금액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적다고 봤다. 일부는 학생이나 청년, 프리랜서, 비정규직, 저소득층이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좌파인) 사회민주당에선 ‘실험 샘플이 너무 적으면 연구가 무의미하다’며 비판했다. 녹색당, 민주당도 ‘기본소득을 지지하지만 이 실험이 실업자에 초점이 맞춰져 잘못됐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캉가스 국장은 핀란드의 이런 상황 때문에 기본소득 실험 이후 “기본소득에 견줘 실행하기에 정치적으로 더 쉬운 제도가 도입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외신은 핀란드 정부가 실업·생계·주거·아동 등 5~6개 수당을 합친 ‘유니버설 크레딧' 제도나, 세금으로 직접 저소득 취업층을 돕는 ‘부의 소득세’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올리 캉가스 국장은 오는 15일 랩2050이 열고 <한겨레>가 후원하는 국제 콘퍼런스 ‘새로운 상상 2018’(리이매진 2018)에 참가하기 위해 12일 내한한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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