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04 18:09
수정 : 2018.04.04 19:41
[짬] 사회정책 전문가 양재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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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사진 송진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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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포용적 성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14일 권고한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2016년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에 쓰는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10.4%로 오이시디 최하위권이다.
한국의 복지 지출 규모는 왜 이렇게 작을까? 사회복지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저서 <작은 복지 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제도에서 그 원인을 진단해 낸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를 지난달 21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책은 지난해 9월 사회과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양 교수는 지난달 15일 영국 한 대학의 초청으로 런던에서 기념 강연도 했고 이 책으로 한국정치학회의 2017년 인재저술상도 받았다.
‘작은 복지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
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 펴내 ‘주목’
공공복지 발달한 유럽과 비교 분석
저임노동 위한 낮은 조세율 ‘주요인’
기업별 노조·관료제·소선거구제…
“개별집단 이해만 반영…개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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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양재진 교수의 저서 <작은 복지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 영문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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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교수는 ‘한국이 급속한 산업화와 성공적인 민주화를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는데도 왜 유럽과 달리 공공복지는 덜 발달했는가’를 책의 주제로 삼았다. “노동자와 같은 복지정치의 수요자, 정치인·관료와 같은 복지정치의 공급자 등 각 주체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어떤 복지제도를 선호하고 어떻게 제도를 받아들였는가에 주목했다. 특히 유럽의 복지 선진국과 비교분석을 시도했다.”
이론적으로는, 산업화 정도가 높을수록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도 발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 영국은 물론 독일보다도 제조업 중심의 산업국가임에도 복지 발달 수준이 낮다. 양 교수는 그 이유를 ‘수출지향 산업화’에서 찾았다.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가격경쟁력 유지를 위해 노동비용을 낮추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임금을 낮추고 복지제도 도입도 늦추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저임금이 가능했던 것은 가처분소득을 올려주는 낮은 조세부담 덕분이었다. 복지정책은 많은 재원이 필요한 만큼 세금을 통한 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 때 경기부양을 위해 대대적인 감세를 택했다. 서구 사회가 케인스주의적 재정확대 정책을 통해 복지 지출을 늘려 개인 소득을 보전해온 것과 반대로 간 셈이다. 이때 형성된 낮은 조세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복지 재정 확보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복지국가 형성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노조의 영향이 미미하다. 양 교수는 그 이유를 대기업 중심의 기업별 노조에서 찾았다. “대기업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한국의 기업별 노조는 단체협상도 고용주와 직접 벌인다. 이 구조에서는 전체 노동자들의 복지보다 해당 기업 노동자의 복지에만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별로 조직되어 있는 유럽의 노동조합은 산업별로 단체협상을 하며, 협상 테이블에 사회보장정책이 핵심 어젠다(의제)로 오르지만 기업별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임금 인상과 기업복지가 주요 의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복지는 회사 안에 있을 때만 유효하다.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기업이 파산하면 노동자가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 이미 여러 번 경험하지 않았는가? 사회보장제도가 없다면 중산층도 순식간에 저소득층이 될 수 있다”며 기업별 복지의 한계를 짚었다.
복지국가 건설에서 중앙집권화된 유능한 관료제는 필요조건으로 꼽힌다. 한국의 관료들은 유능하고 파워도 강력하지만, 공공복지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양 교수는 그 이유로 “한국에서는 경제 발전을 관료가 이끌면서 막강한 파워를 지녀왔지만, 복지 지출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인을 선출하는 선거제도와 정치구조도 복지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그는 “소선거구 제도에서 개별 정치인들은 전국적인 의제보다 지역구에 집중한 좁은 의제에 몰두하게 된다. 즉, 복지 의제와 같은 전국적 의제, 포괄적 의제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전국 선거를 치르는 대통령은 복지에 관심을 갖지만, 승자독식 체제인 만큼 유권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보편적 증세와 같은 의제는 가급적 내세우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복지국가를 위해서 증세가 반드시 의제화되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한국의 소선거구 제도와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양 교수는 이번 개헌에 비례대표제도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정해지는 비례대표제에서는 저소득층과 노동계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득표율 4~5%의 문턱을 둬서 온건다당제를 지향해야 원활한 국정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이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더불어 경제 성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복지국가는 튼튼한 물적 토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요 측면의 소득 주도 성장뿐만 아니라 민간경제의 혁신과 고용 창출을 위한 규제 완화 등의 공급 측면의 개혁도 필요하다.”
양 교수는 작은 복지 국가로 꼽히는 일본·미국의 학자들과 3국의 복지정책 형성을 비교하는 연구를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글·사진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jy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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