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4주만 눈감으면 되는데 1년 6개월 옥살이 택했냐고요?”
지난해 7월15일 대법원은 “양심의 자유도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 달 남짓 뒤인 8월26일에는 헌법재판소가 병역법 위헌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자는 432명이었으나, 2005년 6월 현재 수감자는 1040명으로 크게 늘었다. 법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딱 4주만 눈을 감으면 됐다. 그러나 그는 ‘4주든 10초든 마찬가지’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박사인 정성옥(32)씨는 4주 군사훈련만 마치고 5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하면 국방의 의무를 마칠 수 있는 병역특례 해당자였다. 그럼에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그는 종교적 양심을 지키겠다며 끝내 입대를 거부했다. 1월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장맛비가 내린 9일 오후 광주광역시 문흥동 광주교도소에 있는 그를 그의 가족과 함께 만났다. 그는 가족을 만나는 기쁨 때문인지 환하게 웃으며 면회장으로 들어왔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 박사과정을 3년 만에 마칠 정도로 촉망받는 물리학자였다. 3년 동안 국제학술지에 2편의 논문도 발표했다. 평생 물리학 연구를 하며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박사가 된 지 8개월 만인 2001년 9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 총을 들 수는 없다4주든 10초든 중요치않아…신념을 버리는 것이니까요
이정렬 판사로 잠시 희망…대법원 판결로 ‘절망’
그날 이후 그의 인생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학교 동료와 교수들이 3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검찰에 탄원서를 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판결을 미뤄달라는 내용이었다. 입건 이후 최종 선고를 받을 때까지 3년반 동안 초조와 불안의 나날이었다. 언제든 재판이 열려 법정구속될 수 있는 신분이라 연구원으로 취직할 수도 없었다. 동료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연구 성과물에 그의 이름을 올릴 수도 없었다. 지난해 5월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첫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 잠시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두 달 뒤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주변에서는 “그깟 4주만 훈련받으면 되는데 고집을 피우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4주든 10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총을 드는 순간 제 신념을 버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는 출소를 하더라도 물리학자로서 꿈을 펼치기 어렵다. ‘병역 거부자’라는 딱지가 붙어 국립대는 물론 국책연구기관이나 공공기관 취업은 어림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사립대나 기업 쪽에서도 연구원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연구원 자리를 얻지 못하면, 아내와 함께 외국에서 선교활동을 할까도 생각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물리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희망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그는 “‘저놈들 군대 가서 고생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비난하는 사회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고생하기 싫어서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이 4주 군사훈련 대신, 1년6개월 동안 옥살이를 택하겠냐고?” 그는 지난해 1월 외국인들에게 성서교육을 하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만난 김아무개(28)씨와 결혼을 했다. 과외선생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결혼 1년 만에 부인과 생이별을 했다. 교도소 안과 밖을 가르는 면회실의 투명 플라스틱 너머로 남편을 10분 동안 만난 아내 김씨는 면회실을 나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구속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할 수밖에 없는 잠재적 병역거부자와 그들의 가족들도 이제는 국회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재 수감돼 있는 1040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대부분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박상철 기자 justin22@hani.co.kr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통과될까
수감된 양심적 병역거부 6월 현재 104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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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노 찬성많아…실낱 기대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소수의견으로 대체복무제에 관해 논의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후 대체복무제 입법 움직임이 급물살을 탔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 계류 중인 대체복무제 도입을 뼈대로 한 병역법 개정안이 9월 정기국회 때 통과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에는 종교적 신념 또는 양심의 확신을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사람은 사회복지시설에서 업무를 보조·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대체복무제 대상을 예비군까지 포함시켜 ‘양심에 따른 예비군 훈련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임 의원은 “당 의장을 비롯해 많은 여당 의원들이 찬성하고 있어 당론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반대하지 않으면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고, 민노당 안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법안심사소위에서 조정·선택해서 통과시키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국방부에서는 군 인력 수급 부족과 병역 형평성 문제를 들어 반대하고 있고,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반대 의견이 많아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이석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이 대법원에서 1년6개월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2명에 대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하자,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질의서를 보냈다. 정부는 5월에 보낸 답변서에서 “병역의 형평성, 국민적 합의의 부족 등을 고려하면 대체복무제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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