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19 19:57
수정 : 2006.03.19 19:57
인권위 사회복지 상담실 설치 촉구 1년 지나도 달라진것 없어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에 사는 이아무개(64)씨는 지체장애인이다. 부인도 지체장애인이라 어렵사리 생계를 잇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다. 이씨는 어느날 기초생활수급 등록 신청을 하러 면사무소에 들렀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침 면사무소에서 아는 이웃들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웃들에게 도시에서 잘 살고 있다고 알려진 두 아들이 실은 한 명은 신용불량자이고, 다른 한 명은 아예 행방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차마 이웃들이 듣는 데서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장애있어도 기초생활수급 포기
이씨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국가의 공공부조가 절실하지만 개인적인 속사정이나 사생활이 알려질까봐 두려워 이를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또, 사회복지 서비스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사생활이 알려져 생각지 못한 곤란을 겪은 이도 있다. 이런 상황은 작은 단위의 시골마을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와 행정자치부에 사생활 보호를 위한 별도의 ‘사회복지 상담실’ 설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당시 인권위의 조처는 강원도 홍천의 한 장애인 재단 담당자가 진정을 낸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겨레〉의 현장 취재 결과, 인권위의 요청이 있은 지 1년이 가까운 지금도 이런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성북구 종암2동 동사무소의 경우 별도의 상담공간 없이 담당 직원 책상 옆에 보조 의자를 놓고 상담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웃에 있는 종암1동 동사무소로 가보니, 100평의 넓은 공간이었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별도의 상담공간은 없었다. 다만 종암1동의 경우에는 사무실 안쪽에 있는 꽤 독립된 회의공간을 사용하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동대문구 제기1동의 경우에는 동사무소가 48평으로 비좁아 상담실 마련은 염두조차 두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많은 취약계층들은 여전히 공개 상담을 하면서 사생활 침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복지부 “7월부터 문제 논의”
이와 관련해 행자부 관계자는 “인권위의 권고를 받은 뒤 일선에 상담 공간을 확보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으나,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공간을 확보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따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까진 큰 진전은 없지만, 올 7월부터 이뤄지는 사회복지전달체계 개편에서는 이 문제의 해소방안이 담길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곤 박주희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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