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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7 19:30 수정 : 2006.03.07 22:56

교정시설 출소자들이 임시로 머무르며 사회 복귀를 준비할 수 있는 한국갱생보호공단 산하 한 생활관에서 지난달 27일 입소자들이 취업 등 사회 적응과 관련한 고민을 얘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여성 재소자 인권보고서 (하) 직업교육이 없다


“형님, 허리 아픈데 직원식당 출역하는 건 괜찮우?”

“일거리가 없으면 종일 앉아만 있어서 답답한데, 그거라도 하니 시간이 잘 가서 차라리 낫지.”

지난 2일 전북의 한 교도소 면회실 안. 면회를 온 송아무개(47·여)씨의 걱정스런 질문에 재소자 박아무개(56·여)씨의 힘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교도소 민원실 복도 한쪽에는 재소자들이 직업훈련을 통해 만들었다는 책상, 침대, 식탁 등이 전시돼 있다. 모두 남자 재소자들의 ‘작품’들이다. 이 교도소 안에서 여자 재소자들이 하는 일은 오직 직원식당에서 밥 짓는 일인 탓이다.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2003년 말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도 여성 재소자 중 15.6%만이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받은 직업훈련도 모두 양장·자수·미용·요리 등에 치우쳐 있었다. 여성 재소자들이 출소 뒤 가장 걱정되는 일은 ‘경제적 어려움’이었고, 10명 가운데 7명은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한다고 답한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일거리 없으면 더 답답 “차라리 식당 노역이 낫다”
“직업교육” 도 15% 그쳐…출소뒤 생계 도움 안돼
전문가들 “직업훈련 위해 여성 교도시설 늘려야”

당시 조사를 맡았던 조은경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여성 재소자의 대다수는 돌아갈 가정을 이미 잃었거나 가장으로서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데, 전통 기술 중심의 이런 직업훈련은 출소한 여성들의 생계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에서 오랫동안 격리된 장기수들은 더욱 심각한 처지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여성 무기수형자에 대한 형사절차 및 시설내 처우’라는 논문을 보면, 조사 대상 무기수 43명 중 절반 이상인 22명이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응답을 내놓았다. 남성의 경우 296명 중 절반이 넘는 54.6%가 ‘만족한다’고 답한 것과는 큰 차이다. ‘만족한다’는 이유를 두고서도 남성의 51.3%가 ‘출소 뒤 취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한 데 반해, 여성은 ‘취업에 도움된다’(20.5%)보다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된다”(53.6%)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현재 그나마 구색을 맞춘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은 청주여자교도소 한 곳뿐이다. 이곳에선 미용·한식조리·정보기기 운용·화훼장식·양장·자수기능공·제과제빵 등 직업훈련과, 도자기 무늬 부착, 자동차 배선조립, 봉제 등 위탁 취업이 이뤄진다.

일반 교도소의 대다수 여성 재소자들은 직원식당에서 밥을 짓거나 청소를 할 뿐이다. 경기도의 한 구치소에서 출소한 김아무개(41)씨는 “교도소 안에서 할 일이 없으면 외부의 위탁작업이라도 시킬 것이지 왜 직원들 시중을 들게 하느냐”며 “대가 없는 노동착취”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내가 있던 시설에서는 직원식당 출역을 못하는 사람을 온종일 가부좌로 앉아 있게 해, 대부분은 몸이 고되어도 일 나가기를 원했다”고 푸념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어떤 교도소에선 직원식당 일을 시키려고 잔여 형기가 5년인 여성 재소자조차 청주여자교도소로 보내지 않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의 한 사회적응시설 관계자는 “여성 재소자들의 연령층이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데다 교육 수준이나 형기도 제각각이어서 이들에게 맞춤교육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여성 재소자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직업 훈련을 위해 여성 전용 교도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번 서울구치소 여성 재소자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여성 교도소를 한 군데 더 늘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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