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7 19:42
수정 : 2006.05.18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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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④ 박정희, 넘어서야 할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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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④ 박정희, 넘어서야 할 신화
‘박정희 신화’를 넘어서
고도성장서 ‘복지사회형 생태적 성장’ 전환해야
중기·서민 위한 은행통제·관료체제 활용도 필요
‘박정희 신화’를 넘어설 길은 어디에 있나. 구체적 경로에 대해선 논란을 거듭했다. 다만 큰 방향에 대해선 대체적인 분석이 일치했다. 진보개혁세력이 ‘박정희식 성장’과 구분되는 새로운 성장의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박정희식 고도성장주의는 자연과 노동의 착취를 통해 이뤄졌고, 이때문에 이제 더이상 고도성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며 “이제 우리는 고도성장의 결과를 이용해 고도성장 이후의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핵심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복지사회형 생태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미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보유한 나라가 여전히 70년대식 정경유착과 자연착취로 고통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은 박정희 체계가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 체계가 정부기구·경제구조·생활방식·의식체계를 지배하는 한 ‘선진화’는 그만큼 지체될 것이다.”
이 지점에 대해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규율’의 문제를 제기했다. “누가 어떻게 특권 대재벌의 독단과 폭력을 규율할 것인가. 분배의 과제를 나중으로 미룬 박정희 체제에 뒤이어 누가 무슨 힘으로 재벌로 하여금 사회적 비용으로 키운 빵을 사회에 나눠주게 할 것인가.”
정승일 대안연대 정책위원은 박정희 체제의 유산 중에서 버릴 것과 살릴 것을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재벌만을 위한 은행여신은 버리자”고 말했다. 대신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은행여신을 위해 은행체제에 대한 적절한 정부통제는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식의 직접통제는 아니더라도 금융감독기구를 통한 간접통제는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료체제도 적절히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재정경제부는 분명 신자유주의의 아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조직을 없애고 국가의 시장개입을 없애서는 안된다. 그 방향과 역?l을 바꾸면서 관료체제를 계속 활용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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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승일 대안연대 정책위원, 신광영 중앙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홍성태 상지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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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도 ‘사회적 국가개입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정희 시대의 왜곡된 국가개입주의를 사회적 국가개입주의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은 정 위원과 조금 달랐다.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꼭 박정희 모델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유럽 사민주의 국가 등 다른 사례가 많다. 총체적 모델로서의 박정희는 무덤에 묻고 가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18년 동안 민중을 억압하고 그 통치기간의 반절 이상을 위수령·계엄령으로 연명한 끝에, 결국 민중의 저항으로 붕괴됐던 체제다.”
홍성태 교수는 박정희 시대 태어난 개발공사의 문제를 지적했다. 수자원공사·토지공사·주택공사·농업기반공사·한국전력 등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대규모 공사들이 자연·노동 착취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정권이 바뀌는 것으로 민주화가 끝나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개발공사를 비롯한 박정희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개발독재의 전위대나 마찬가지였던 국가주도 개발공사들을 그대로 두고 민주화를 말해선 안된다.”
논쟁을 거듭하며 박정희 신화를 넘어설 길을 모색했던 짧은 여정에서 이병천 교수의 말은 더욱 울림이 깊었다. “대한민국의 새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박정희라는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건 구호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독재도 독재 나름이고 민주주의 또한 그 나름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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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보수세력
이병천=박정희 성장 모델은 정통 시장자유주의가 아니라 비자유주의적 개발 자본주의였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는 시장주의를 내세운 현재 한국 보수세력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홍성태=박정희 체제를 부활시킨 보수세력의 태도는 모순적이고 비열하다. 자유주의를 내세운 한국의 보수세력이 국가주의의 상징인 박정희를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박정희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보수주의는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박태균=한국의 보수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 반공이데올로기, 국가주의 사이에서 서로 착종하고 있다. 박정희 신드롬은 이런 착종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희연=박정희 모델은 투자비용은 사회화하고, 과실은 철저히 사유화했다. 보수세력은 지금도 투자비용은 사회화면서 과실은 대자본으로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박정희를 부활시키고 있다.
박정희와 진보세력
신광영=박정희 신드롬은 문민정부 이후 민주화세력의 무능력의 산물이다. 박정희를 무덤에 가둬두는 것도 필요하지만, 문제의 원천으로서 박정희 체제의 특징을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
이병천=민주적 정당성의 실패가 다시 박정희를 불러들이고, 박정희의 엄호를 받는 보수 세력은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다. 진보개혁세력이 사회 경제적 양극화 극복과 진보적인 대안을 책임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실력을 갖지 못하면 박정희 신화는 계속 지속할 것이다.
조희연=몇 가지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싸잡아 비판하는 방식으로 박정희 체제를 비판하면 안된다. 반 박정희 담론을 다양화, 다원화시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정승일=박정희 체제를 척결하려는 이른바 ‘시장개혁’이 얼마나 시장자유주의적이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개발독재’를 척결하려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도입된 ‘시장의 독재’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박정희 문제의 복합성
조희연=파쇼체제로 단순하게 환원할 수 없는 박정희 체제의 복잡함이 존재한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과 착취만 강조하고 여러 복합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정승일=부동산, 재벌 문제 등을 모두 박정희 체제의 탓으로 돌릴 수 있나? 자본주의는 원래 통제하지 않으면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체제다. 자본주의의 일반 속성을 놓고 박정희 체제의 잘못이라고 몰아 붙이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병천=한강의 기적을 낳은 박정희 체제, 유신·광주학살·외환위기의 원점인 박정희 체제를 모두 시야에 넣고 살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진보개혁이 박정희를 진지하게 대면해야 한다.
홍성태=박정희 시대에 대한 대중들의 맹신에 대해선 정치적 과제로서 대응하되, 박정희 시대에 이뤄진 변화와 성과에 대해선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노동·민중의 입장에서 고도성장의 효과를 간과하는 문제가 있었다.
박정희 체제의 유산
신광영=양극화, 재벌 지배, 부동산 투기 등 압축성장에 내재한 박정희 체제의 모순이 현재까지 한국 경제의 족쇄가 되고 있다.
정승일=박정희 시절에 기술혁신과 시장개척으로 국제경쟁력을 얻은 대기업들 덕택에 지금도 우리 경제가 몰락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이미 박정희 체제의 유산은 거의 다 사라졌고, 현재의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민주정부의 무능에서 비롯됐다.
이병천=정치적 독재와 대재벌의 독단과 폭력을 누가 어떻게 규율하는지에 대해 박정희 모델은 답하지 않았다. 이 모델이 창출한 국부는 분배의 과제를 나중으로 미뤘다. 그런데 여기서 탄생한 소수 독점적 재벌의 지배력은 여전히 동반성장의 걸림돌이다. 그들은 이제 ‘길들이기엔’ 너무 큰 괴물이 됐다.
홍성태=박정희 체계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체계다. 현재 한국사회의 원형이 박정희에게 있다. 정권이 바뀌는 것으로 민주화가 끝나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박정희 체계를 개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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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선진대안포럼에 지금까지 참여해주신 분들 (가나다순)
강신욱(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양극화연구팀장), 강원택(숭실대 교수), 고병권(수유+너머 공동대표), 김명인(〈황해문화〉 주간·실행위원), 김유선(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실행위원), 김호기(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박명림(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태균(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손호철(서강대 교수), 신광영(중앙대 교수), 신정완(성공회대 교수), 양현아(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이병천(참여사회연구소장), 이일영(한신대 교수·실행위원), 이정우(경북대 교수), 임지봉(건국대 교수·실행위원), 장상환(진보정치연구소장), 정승일(대안연대 정책위원), 조현연(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조희연(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황인성(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홍성태(상지대 교수·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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