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2.24 19:31 수정 : 2006.02.24 19:36

오는 28일 3천호를 끝으로 종간하는 <인권하루소식> 편집인 강성준씨(가운데)가 동료 활동가 범용(왼쪽)·배경내씨와 함께 지금까지 발행한 합쇄본 옆에 섰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진실 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낮엔 ?동가, 밤엔 편집 악조건 속
언론 관심갖지 않은 인권 의제화
‘남매간첩단’ 공작 등 밝혀내
“4월 새로운 매체 발간 준비”

진보적 인권운동단체 ‘효시’ 격으로 평가받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일간지 <인권하루소식>이 28일 3000호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난 1993년, 장기수 후원 운동을 하다 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간 한 활동가를 구명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여기저기 팩스를 보내다 아이디어를 얻어 그해 9월7일 발행을 시작한 지 12년6개월 만이다.

편집인 강성준씨는 24일 “인터넷 언론들이 생겨 속보경쟁도 뒤처지게 됐고, 기존 언론들도 인권 문제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게 주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강씨는 “그러나 인권운동사랑방의 기관지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현재 4월 창간을 목표로 새로운 매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은 가진 것 없이 초라하게 출발”하지만 “진실을 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고 한 창간사처럼 인권하루소식은 기존 언론이 관심을 두지 않고, 보통 사람은 생소하게 느꼈던 인권 문제를 끊임없이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냈다. 1993년 이른바 남매간첩단 사건이 프락치의 공작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원진레이온 노동자 사망,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양지마을 강제노역 등을 인권 문제로 다룬 것도 인권하루소식이었다.

창간 때부터 1년반 남짓 인권하루소식을 냈던 염규홍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낮엔 활동가로서 운동을 하고, 밤엔 편집을 하느라 새벽 네댓시에야 잘 수 있었다”며 “팩스 1대로 전송을 하고,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안 왔다고 하면 다시 보내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인권 문제를 의제로 만든 덕분에, ‘인권하루소식’은 1996년 전국언론노조가 주는 민주언론상 특별상, 2000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주는 민주시민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탄압도 적지 않았다. 1000호 발간을 앞둔 1997년 가을, 당시 발행인이던 서준식씨가 인권영화제에서 <레드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그러나 실상은 그해 8월 서씨가 “한총련을 탈퇴하느니 탄압을 견디며 감옥에 감으로써 정신의 젊음을 지키라”고 쓴 기사 때문이었다고 활동가들은 기억한다. 이 때문에 편집인 없는 1000호 기념행사는 ‘필화사건 규탄대회’로 바뀌기도 했다. 노동 탄압으로 기사화된 기업들이 소송을 내겠다고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권하루소식이 12년여 동안 다룬 문제를 훑어보면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의 발자취가 한눈에 들어온다. 1990년대 초반에는 국가보안법·조작간첩사건 등 국가권력이 정권 안보를 이유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사회적인 이슈였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국가가 저지르는 인권 침해가 가시적·제도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제도를 운영하는 데서 생기는 반인권적 상황은 여전히 문제였다. 성 소수자 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또 사회적으로도 이주노동자와 성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더욱 세분화됐다.

편집인 강씨는 “‘인권하루소식’은 우리나라 인권운동 역사의 기록”이라며 “주류 언론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 노릇을 자처했지만, 제대로 해왔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해했다.


다루는 이슈가 달라진 만큼, 발행 방법도 달라졌다. 팩스와 우편발송으로 출발한 인권하루소식은 1995년 12월 피시통신 서비스를 거쳐, 1996년 6월 인터넷 서비스, 1998년 10월 전자우편 서비스로 ‘진화’했다. A4 용지 두 장 분량으로는 깊이 있는 소식을 전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지난해부터는 팩스 발행을 중단하고 인터넷과 전자우편, 우편으로만 발행해 왔다.

강씨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사용자도 파업권이 있다고 대응하는 것은, ‘이권’과 ‘인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재산권, 기득권조차도 인권이라고 우기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해야 진짜 인권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슈들을 좀더 분석적이고 깊이 있게 다루자는 게 후속 매체 발간의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