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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5 20:23 수정 : 2016.01.06 09:15

쉼과 깸

지난 12월 마지막날과 새해 첫날, 초저녁에서 새벽 세 시까지 방안의 잡동사니와 책을 정리하면서 나만의 해넘이와 해맞이를 했습니다. 책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저마다 귀하고 정이 가기 때문입니다. 독서목록을 보니 한 해 동안 60여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 한 권 제목을 훑어보면서 몇 권의 책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를 흔들고 울리고 깨우침을 준 책들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책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모세혈관에 깊은 통증을 느낍니다. 또 김찬호 교수의 <모멸감>은 지난해 읽은 어떤 책보다도 나의 눈을 새롭게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왜 서로 모멸감을 주고받는가?”라는 물음은 우리 시대의 화두입니다.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마음과 감정의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지평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인간의 마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새롭게 공부할 것이 있겠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책의 본문을 펼치기 전에 제목과 목차부터 살핍니다. 그것들이 함축하고 있는, 지시하고 의미하는 바를 헤아려보기 위해서입니다. <모멸감>은 ‘나도 모르는 나’,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라는 서문으로 시작합니다. 보통 감정은 개별적인 영역에서 주관적 특성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진단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분노와 열등감 같은 것들은 ‘내 탓’으로 돌리고, 회개하고 내려놓으라는 처방전을 내립니다. 그러나 두려움, 슬픔, 수치심, 외로움, 기쁨, 사랑, 우울, 비하의 감정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를 만나고 수많은 말을 듣습니다. 보고 듣는 그 자리에서 어떤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미소 뒤의 분노, 감정노동’이라는 목차가 함의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절과 환심을 담보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감정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 굴욕감을 대변한 말입니다.

나의 얼굴 표정과 말투 하나에도 깊은 성찰과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 시절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그 동력은 부러움이다”(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돈에 대한 선망과 질투가 자기를 비하하고 타인을 모멸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라는 목차에서는 저마다의 자존을 위하여 인정욕구와 비교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함을 깨우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받은 모멸과 억압을 또 다른 타인에게 행사하는 불온한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은 오직 사랑과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행복감은 우월감이 아니다’와 ‘환대의 시공간’이 주는 의미가 여기에 부합합니다.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행복은 곧 내가 존귀하다는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서로를 존중하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평범한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뜻한 눈길과 부드러운 말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존귀해지는 새해를 그려봅니다.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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