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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4 18:06 수정 : 2019.12.25 02:35

전남 보성 복내전인치유센터장 이박행 목사
잇단 중병으로 좌절했던 경험 살려
천봉산 자락에 센터 설립한 지 23년
현대의학에서 영성치유까지 총망라
지금까지 100회 넘게 프로그램 운영
“핵심은 사랑…필요한 건 모두 도와”
2년 전 암 환자들 자발적 쉼터로 변신

“병은 생활의 패턴을 바꾸라는 요청
욕망·파괴서 절제·순환의 삶으로
많은 걸 갖고 있을 땐 선택 어렵지만
병에 걸리면 존재 자체에 집중 가능
아픈 이가 곧 우리가 섬겨야 할 예수”

전남 보성 천봉산 골짜기에서 26년째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복내전인치유센터장 이박행 목사.

예수님오신날을 맞아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곳곳에서 반짝인다. 그러나 전남 보성군 복내면 일봉리 천봉산 골짜기에 있는 복내전인치유센터는 그런 화려함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이 산골에서 26년째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이박행(57) 목사는, 30년 전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주도한 개신교 보수 교단의 산실로 세계 최대인 서울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원우회 회장이었다. 서울 강남의 대형 교회 강단이 더 어울릴 법한 기독교 유망주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달릴 만하면 쓰러졌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면 다시 쓰러졌다. 만약 그런 좌절이 없었다면 그도 더욱 큰 교회를 만들고, 화려한 네온사인에 어울리는 목사가 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사구체신우염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휴학한 이래 군, 대학, 신학대학원 등에서도 매번 간염, 간경화 같은 중병으로 무려 5번의 좌절을 경험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10대 때부터 옷보따리를 싸짊어지고 신유(신이 치유하는 것) 집회를 쫓아다니며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그리고 광주에서 고3 때 5·18 학살 현장을 직접 본 뒤엔 대학에서 운동권이 되었다가 모태신앙으로 ‘귀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현실참여의 끈을 결코 놓지는 않았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엔 김진홍 목사가 서울 신림동 빈민촌 난곡에 설립한 공동체 두레학숙의 책임자로도 활동했으나 간경화가 도져 그마저도 2년 만에 하차했다.

이렇게 끊임없는 병고가 그를 이 산골로 이끌었고, 1996년 복내전인치유센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의사로서 전인치유의 선구자였던 김영준 박사가 발 벗고 나서서 이 목사의 사역을 도우면서 천봉산 골짜기에서 현대의학과 대체의학, 자연치유, 생활의학, 영성치유를 총망라해 암 환자들을 돕는 전인치유가 시작됐다.

복내전인치유교실에서 건강체조를 하는 참가자들. 사진 복내전인치유센터 제공

“암 환자들은 지푸라기도 잡고 싶어 하는데, 기도원파는 ‘주여’, ‘주여’만 부르며 하늘만 쳐다보고, 현대의학은 영성치유의 측면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체의학을 하는 이들은 자기 것만이 전부라고 다른 것은 몽땅 거부하곤 했다. 그러나 아픈 이들은 생명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다 도움을 받고 싶은 심정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센터에서 4박5일씩 숙식을 함께하는 복내전인치유교실이 시작됐다. 20~30명이 풍욕과 건강체조, 산책, 명상, 자연 식이요법, 건강교육, 심신상관 심리치료 등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기독 의료인들의 모임인 누가회 광주전남지회 간사를 맡은 이 목사를 따르는 의사들도 기존의 편견을 넘어 전인치유를 적극 돕고 나섰다. 이 프로그램은 107회까지 이어져 전인치유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 목사는 전인치유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이 암세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치유 교실에서 한 환우를 둘러싸고 모두가 그에게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보기도도 사랑의 방사였다. 그는 병이 사랑을 키워주고, 제대로 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임을 강조했다.

복내전인치유교실에서 이박행 목사 등 참여자들이 한 환우를 향해 사랑을 담아 쾌유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 복내전인치유센터 제공

“병은 삶의 패턴을 바꾸라는 강력한 요청이다. 욕망이 아닌 절제의 삶, 소비와 파괴의 삶에서 지속가능한 삶, 무한 성장의 삶에서 생명 순환의 삶으로 전환하라는, 즉 우리가 창조 질서로부터 벗어났으니 다시 창조 질서에 순종하는 삶으로 회귀하라는 초대다.”

그는 고통받는 수많은 기독 환우들의 아픔을 보고 돌보면서 “교회가 가장 앞서서 이기심을 배가시키고, 생명이 순환되도록 돕는 청지기가 되기보다는 폭군이 되어 자연을 착취하고, 오직 전투적으로 성장만을 꾀하고, 선교라는 이름으로 현지의 고유한 문화나 가치관을 짓밟아 암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성찰하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이사로 활동하고, 3년 전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을 태동시켜 한국 교회에 생명문화 확산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무슬림인 예멘 난민들을 예멘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할 때도 사마리안행동을 결성해 인도주의적 돌봄 서비스에 일조했다.

전인치유교실에서 춤명상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 복내전인치유센터 제공

그는 국립암센터의 연구 자문에 응해 통합적인 요양병원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에 따라 전인치유가 전국의 요양병원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며 누릴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의료보험 혜택이 없는 이곳이 소외되었다. 그러면서 2년 전부터 이곳은 전인치유교실 대신 암 환자들이 와서 스스로 치유하는 쉼터로 변모했다.

이 목사는 전인치유교실을 중단하면서 산골마을 살리기에 눈길을 돌렸다. 산골 사람들 10여명과 함께 2013년부터 복내마을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김치 생산에 나섰다. 복내전인치유센터에 온 환우들이 집에서도 이곳 김치 맛을 볼 수 없느냐고 한 부탁이 기원이 됐다. 영양학을 전공한 이 목사 아내의 이름을 딴 ‘최금옥김치’는 올해 처음 흑자로 돌아서 마을 출자자들에게 배당도 해줄 수 있게 됐고,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김치 40상자를 기증하기도 했다.

최근엔 광주전남누가회 소속 의사로서 이 센터 초기부터 함께하고 예멘에서 10년간 무료 병원을 운영하고 귀국한 박준범 원장이, 서울 문정동 법조타운 인근에 새숨병원을 열어 복내전인치유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도시와 산골의 연계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복내전인치유의 정신이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자연식으로 식사하는 전인치유교실 참가자들. 참가자들이 이곳에서 먹던 김치를 집에서도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청에 따라 마을기업인 김치공장이 만들어졌다. 사진 복내전인치유센터 제공

이 목사는 마을기업 대표가 되었지만 “역시 아픈 사람들을 도울 때 나다워지는 것 같다”며 “인간은 가장 약할 때 본질에만 충실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선택이 어렵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몸이 아파도 기업을 놓지 못하고, 사회적인 명예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집착한다. 가족 뒷바라지에 매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지키려다 아픈 자신을 학대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다. 병에 걸리면 선택이 명확해진다.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통받는 암 환자의 가족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예수님은 지금 가장 아프고 가장 약한 사람으로 와 계신다. 지금 우리 곁에 아픈 사람, 그가 우리가 섬기고 돌보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할 예수님이다.”

보성/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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