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25 19:02 수정 : 2019.11.26 02:06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전국비구니회 새 회장 본각 스님
“비구니 국제교육기관 설립할 것
정치 아니라 수행하는 회장 되겠다”
성철 스님 권유로 6남매 모두 출가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서울 강남구 광수산 기슭에 조계종 6천여명 비구니 스님들의 중심인 전국비구니회관 법륭사가 있다. 강남 요지에 멋들어지게 지어진 지 17년이지만 지금껏 일요법회도 없고, 비구니 스님들의 회의 장소로만 명맥을 이어왔다. 그런데 이곳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4년 임기의 전국비구니회장에 본각(67) 스님이 취임하면서다. 25일 법륭사에 들어서자 한쪽 실내 벽면을 가득 채운 ‘일회용품 줄이기 스님들이 앞장서요’란 대형포스터가 먼저 눈에 띄었다. 취임식 날 이제 비구니 스님들부터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며 도시락통과 젓가락 2천여개를 선물한 스님이다. 말만 하지 말고 나부터 달라지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스님은 태생부터 ’전통적’이다. 큰스님 천제 스님이 중2 때 성철 스님(1912~93)의 맞상좌로 출가한 것을 시작으로 성철 스님 권유로 6남매 모두가 출가한 전설의 집안이다. 오빠 둘은 성철 스님이 주석한 해인사로, 네 자매는 성철 스님과 각별했던 비구니계의 대부 ‘인홍 스님(1908~97) 상좌들에게 출가했다. 6남매의 막내로 불과 3살이던 본각 스님이 맡겨진 곳은 인천에서 주로 고아들을 키우던 부용암의 육년 스님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짖굿은 데가 있었단다. 어른 스님들이 찾아 헤매면 늘 부용암 밤나무 위에 숨어있으며, ‘한번만 위를 쳐다보면 금새 찾을 수 있는 것을 왜 아래에서만 찾고 있는지 인간의 시야가 얼마나 좁으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른 스님들에게 떼를 써 다시 머리를 기르고 고교와 대학을 다니고, 그것도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한 것만 봐도 남다른 구석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세상 구경을 한 뒤 26살에 다시 삭발을 하고, 성철 스님에게 화두를 받기 위해 밤새 3천배를 하고는 수행자로서 더 이상 한눈을 팔지 않았단다. 일본 유학까지 하고 중앙승가대 교수직을 26년이나 했지만, 그는 교수가 아니라 수행자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에 비구니회장 선거에 출마해서는 “정치하는 회장이 아니라 수행하는 회장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의 때만 오던 역대 회장들과 달리 이곳에서 아예 머물고 있다.

그러면서 법륭사는 1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상주하는 사찰의 훈기가 감돌며, 서울에 와도 숙식할 곳 하나 없던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이 머물 장소로 재탄생하고 있다. 일요법회 등을 통해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본격적인 사찰로 거듭날 준비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가꾸었던 경기도 고양 금륜사 신도들은 ‘우리 스님이 비구니회장이 됐다’고 좋아했다가 ‘우리 스님을 비구니회에 뺏겨버렸다’며 울상을 짖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각 스님은 금륜사는 사직이지만 비구니회는 공직이며 개인적 희생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곳에 전세계에서 비구니 출가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국제교육기관과 지역 여성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만들려고 한다. 노숙자를 돕는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구니 스님들이라도 더 이상 정의의 문제에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고도 했다.

그는 많은 일을 벌일 태세이면서도 법륭사 공동체에 함께 사는 이들에게 ‘이왕 사는 한세상 재밌게 살아보자’며 끊임없이 긍정의 기운을 방사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