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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8 09:46 수정 : 2019.08.28 10:00

사춘기 되면 개인의식이 싹터
‘내가 누구인지’ 찾아 나서지만
타인 입장 조망 능력 없다보니
남 아랑곳 않고 자신만 챙기고
내 권익만 내세우니 소통 못해
‘관계적 존재’라는 본성 못 살려
현대인 마음병이 여기서 비롯

과도한 성공 집착 문화도 이 때문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체험 통해
‘나는 괜찮은 인간’ 가치감 가져야

인터뷰/가톨릭 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 신선미 소장

가톨릭 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 신선미 소장은 “자신을 존중하게 되면 몸에 활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개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관계’를 어느 때보다 힘들어한다. 주로 내적 성소를 찾는 데 주력해온 가톨릭 수도회에서조차 ‘심리상담’이 부상하는 데서도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다.

서울 명동성당 부근 전진상교육관이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심리상담을 배우는 성소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관의 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 신선미(60) 소장이 1, 2학기 14주씩 진행하는 ‘자아의 통합과 영성’ 강좌엔 100명 안팎이 참여해 성황을 이룬다. 신 소장은 개인 상담과 집단 상담을 하면서 이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늘 현대인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많이 듣는 그에게 ‘요즘 한국인들의 심리 상태’를 묻자 ‘사춘기 단계’로 진단했다. ‘아니 민주시민 의식에선 어느 선진국 못지않다고 자부하기도 하는데, 마음 상태가 그렇게 저차원이라고?’ 이에 대해 그는 “심리발달 단계를 보면 유아기에는 엄마와 아이가 심리적으로 구분이 안 된, 즉 미분화된 상태여서 독립하지 못하다가 사춘기가 되면 개인의식이 싹터 ‘내가 누구인지’ 찾아 나서게 된다”며 사춘기와 성숙기를 구분하는 것은 ‘자기애’가 아닌 ‘타인에 대한 조망 능력’이라고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볼 수 있느냐가 소통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하기에 그것이 아이의 단계냐, 어른이냐를 구분짓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부장 문화를 살아왔다. 그때는 획일화된 집단문화가 지배해 불평등이 팽배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너도 싫어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렇게 집단에 의해 자아가 침해를 받은 상처의 반작용으로 지금은 자기애가 과도해졌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중요하고, 남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 챙기게 됐다.”

신 소장은 “타인의 입장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하고 내 권익만 내세우면 소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현대인들의 소통 부재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기에 가장 목말라하는 욕구가 친밀감이다. 내면 깊숙이 친교의 욕구가 있는데, 그런 만남이 없으면 삶이 공허해진다. 현대인들의 많은 병이 소통과 친밀감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 때문이다. 요즘 자주 발생하는 엽기 살해도 고립에서 오는 우울과 분노, 불안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신 소장은 또 요즘 한국인들이 이기적 자기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자기 가치감 부재’ 때문으로 본다. 개인주의 시대에 왜 자기 존재감이 없는 걸까.

“가부장 시대 가장의 권위가 이제 성공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라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게 아니고, 이제 부자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르지 않으면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자식에게마저 오직 경쟁에서 승리와 성공과 성취만 강조한다. 그래서 하나같이 외형적 성공, 부, 직위, 스펙을 추구하다보니 도덕성이 바닥을 치고, 정신적으로 불건강한 사람들투성이가 됐다. 그러나 자기 가치감은 사회적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성형수술을 해서 외모가 바뀐다고 해서, 부자가 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자기 가치감은 그렇게 뭔가를 이뤄야 얻는 것이 아닌, 한 사람에게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체험에서 온다. 그런 체험이 없으면 허기를 메우기 어렵다.”

특히 그는 “내가 괜찮은 인간이라는 가치감이 바닥을 치면 삶이 버겁고 부당한 것들과 맞서 싸우고 버틸 용기를 잃어버려 갈수록 자기 존엄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고 했다.

신선미 소장이 진행하는 인간관계 그룹훈련 모습. 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 제공
신 소장은 11년간의 초등학교 교사직을 뒤로하고 국제가톨릭형제회에 입회했다. 그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평신도 사도직을 걷기로 한 것도 자기 가치감을 갖지 못한 자신을 본 때문이다.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실패를 거듭해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오빠, 언니들이 친척집에 보내진 가운데 젖배를 곯아 너무도 병약해 늘 ‘저 애물단지’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내적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그가 자신을 좀 더 제대로 직면하게 된 것은 이 형제회에 입회해서 1991년 인간관계 훈련을 받을 때였다.

“그전엔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감정을 억압하고 살아오면서 정서가 발달이 안 된 자신을 발견했다. 정서가 발달이 안 되니 마음을 나누기 어렵고 깊은 관계를 만들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더 깊은 자기 치유와 심리 공부를 하러 2000년부터 2년간 영국 켄트 성앤셀름학원에서 통합영성심리상담 코스 2년 과정을 마쳤다. 그가 개인치유의 변곡점을 맞은 것도 그때였다. 괜히 태어나 부모를 힘들게 하는 죄인이라는 무의식으로 자존감이 없던 그는 테라피스트가 “부모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묻자 자기도 모르게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게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라는 말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 뒤 무엇보다 활기가 생겼다고 한다.

“국제가톨릭형제회 수련자들 중에서도 제일 많이 졸았던 사람이 나였다. 늘 피곤을 느꼈다.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느라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쏟으니 늘 피곤했다. 에너지 누수가 많으면 현실 지각력도 떨어지고, 자주 잊어버리고, 실수도 잦아지게 마련이다. 몸도 아프게 된다. 잠으로 현실도피하려는 경향도 많다. 그러나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게 되면 몸에 활력이 생긴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엔 가톨릭 수도자들도 적지 않게 참석한다. 그는 ‘너무 수도자스러워’ 엄격주의에 빠져 자신을 억압하지 않도록 한다. ‘복음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옷 하나를 살 때도, ‘이런 욕구 하나 절제를 못 하다니’라며 자신을 책망하거나 공동체의 눈치를 보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그는 이제 멋지게 차려입고 귀걸이를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자기희생만 강조하면 피해의식이 생기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누리면 기쁘고 자유로워지고 더 여유가 생겨 타인들을 더 넉넉하게 품을 수 있다. 영적 생활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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