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9 18:38
수정 : 2019.06.10 00:42
[짬] 고창 호암마을 동혜원 공소 강칼라 수녀
|
강칼라(가운데) 수녀가 8일 ‘제1회 호암마을 봉사상’을 받은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임근 기자
|
전북 고창군청에서 북서쪽으로 5㎞가량을 가면 고창읍 호암마을이 있다. 마을 뒷산에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1952년 들어선 붉은 벽돌의 ‘동혜원 공소’가 있다. 통상 벽지에 위치한 공소는 사제가 없는 성당이다. 이 마을을 한센인들이 만들었다. 지금은 한센인 후손들과 이주한 주민 등 60여명이 마을 신앙공동체를 꾸리며 살고 있다. 이곳에 마을 사람들의 누이로, 딸로, 어머니로 살아온 푸른 눈의 수녀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강칼라(76) 수녀. 그가 가난한 병자들과 함께 살아온 ‘마더 테레사’처럼, 호암마을 등 이 땅에서 참 신앙인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온 지 50년이 넘었다. 8일 공소 뒤편 야외에서 ‘강칼라 수녀의 한국 나눔의 삶 50돌’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1968년 고국 이탈리아서 한국행
한센인 정착촌에서 헌신적 삶
8일 나눔의 삶 50돌 기념 행사
김정숙 여사도 존경과 감사 메시지
“축하받을 만큼 일한 게 아니라
함께 생활했을 뿐…창피한 마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비록 자신이 원하지 않을지라도, 주님께서 마련한 십자가의 길을 활짝 열고 걷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의 삶의 방식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분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가장 부유하게, 불편했지만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내어놓은 헌신적인 나눔의 삶으로 훌륭한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은혜를 청합시다.”
50돌 행사의 하나로 이날 오전 봉헌된 미사를 집전한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의 말이다. 김 교구장은 강 수녀의 희생과 봉사로 마을이 처음 2명에서 시작했으나, 한때 200명이 넘을 정도로 주민들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그가 한센인들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한국어를 따로 배웠고, 스페인에서 한센병 환자 돌보는 방법을 익혔으며, 간호보호사 자격도 얻었다고 말했다.
|
강칼라 수녀가 8일 ‘한국 나눔의 삶 50돌’ 축하 미사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박임근 기자
|
|
강칼라(맨 가운데) 수녀가 8일 문규현(맨 오른쪽) 신부 등 내빈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임근 기자
|
강 수녀는 1943년 이탈리아 북부 마을 쿠네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탈로네 리디아’, 세례명은 ‘카를라’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4남매한테 ‘바르게 사는 삶, 나누는 삶,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19살인 1962년 ‘작은 자매관상 선교회’에 들어가 수녀가 돼 전쟁고아들을 돌봤다. 한국에도 전쟁고아와 한센인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운명처럼 선교회를 따라 25살인 1968년 한국에 왔다. 애초 브라질에 갈 예정이었으나, 한국으로 파견 갔던 수녀 중 한 분이 아파서 귀국하는 바람에 자원하게 됐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자 한센인 정착촌을 찾았다고 한다.
원래는 지난해에 50주년 행사를 해야 했는데 그가 고사해 치르지 못했단다. 호암마을 방부혁 이장은 “수녀님이 나이가 드셔서 이제 시간이 더 지나면 이런 행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도록 하자’고 제안하며 수녀님을 간신히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날 소록도에서도 손님이 오는 등 많은 사람이 축하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늙고 외로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준 생애에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섬김과 사랑을 가르쳐준 수녀님의 오랜 건강을 바란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유기상 고창군수는 “수녀님의 숭고한 뜻을 이어 고창군을 나눔, 봉사, 기부의 천국으로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 수녀에게 이탈리아 명예훈장을 주기 위해 이날 행사장에 참석한 페데리코 파일라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이탈리아 정부에서 강 수녀가 한 일을 인정해주기 위해서 왔다. 그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여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했다.
주민 배경자씨는 “젊었을 때는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수녀님이 이제 백발이 됐다. 우리에게 사랑을 알게 해 줘서 정말 감사드린다. 내가 본 최고의 천사 엄마”라며 수녀님께 드리는 글을 낭독했다. 이날 강 수녀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했다. 그는 “솔직히 축하받을 만큼의 일을 제가 한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생활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창피한 마음이 든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이날 강칼라 수녀가 수여한 ‘제1회 호암마을 봉사상’에 강지훈(18·고창 영선고 3)군과 김초은(18·고창여고 3)양이 받았다. 수상자들은 “강 수녀님이 주는 상을 받게 돼 뜻깊고 영광스럽다. 앞으로 남을 위한 사랑을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강칼라’ 이름은 세례명 ‘카를라’를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부르다가 ‘칼라’가 됐다. 성은 아이를 갖지 못한 한 한센인 환자가 출산을 앞두고 자신의 성을 받아달라고 부탁해 강씨가 됐다. 한국 나이로 희수인 강칼라 수녀는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가락이 기형적으로 변하는 기형성 관절염 증상이 심하다. 이날 그의 발자취를 다룬 영상에서 본 그의 발은 마치 생강처럼 휘어져 있었다. 무릎도 10여년 전 인공관절로 대체했다. 등도 굽고, 백발에 얼굴 주름살도 깊다. 수년 전부터 이곳에서 함께 사는 우을리 피에라(67) 수녀가 그의 건강을 돌보는 동반자다.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와 기도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2015년 대한민국 한센인 대상, 2016년 국민훈장 모란장, 2017년 자랑스러운 전북인 나눔대상, 2018년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