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7 09:29
수정 : 2019.02.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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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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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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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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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이란 가톨릭 호칭이 일반인에게 친근해진 것은 김수환 추기경 때부터입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나라의 어른으로서 자리매김하시다가 떠나신 추기경님. 철없는 아이 같은 어른들이 판을 치는 작금에 어른이신 추기경님의 부재가 깊이 느껴지고 갈수록 그리움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살얼음판을 딛는 듯한 시기에 그분의 한말씀이 얼마나 아쉽고 그리운지요. 시인 박노해는 ‘거룩한 바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른이 그리운 시대 큰 어른이 가셨다. 영하의 추위 속에 고요한 긴 줄. 멈춤 침묵 돌아봄 정화. 울고 싶고 기대고 싶어도 의지할 언덕 하나 없어 삶의 무거움이 가슴에 응어리진 사람들. 누구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아 거룩한 바보를 찾아 나선 사람들 말없이 느린 행렬로 난 바보야 난 바보야 가슴치며 가슴치며 벽 강물로 흘러가는 사람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푸념을 하기도 합니다. 죽어야 할 놈들은 장수하고 오래오래 살아야 할 분들은 하늘에서 일찍 불러간다고. 큰 그릇이 안 계시니 자기밖에 모르는 좁쌀영감들, 속 좁은 옹기들이 판을 친다고 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부모가 부모 노릇을 잘못하면 아이들이 문제아가 된다고 하는데 어른이 없는 우리나라가 딱 그 처지가 아닌가 합니다.
신부들은 자기 축일날 아침 아홉시쯤이면 전화기 앞에서 대기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축하전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군대 지휘관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길을 가시다가 갑자기 방문해서 ‘어떻게 사는지 보러 왔다’고 해 놀라고 기뻤던 기억도 납니다. 신부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맺고자 했던 자상한 분이었지요. 그러나 항상 자상하고 따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아주 날카로운 면도 있었지요.
서품을 받기 전 피정 마지막날 추기경님과의 면담 시간. 나이순으로 줄 서서 면담을 기다리는데 먼저 나온 동창들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 왜 저러지 하다가 내 차례. 근엄한 표정의 추기경님이 물었습니다. “자네 서품 성구가 무엇인가?” 서품을 받는 신부들은 평생 지침으로 삼을 말씀을 성경에서 골라서 서품 성구로 합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하나 되게 하소서’입니다. 그랬더니 ‘그 성구를 사용하는 사람치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 못 보았네’ 하는 것입니다. 그러곤 아주 무거운 침묵. 속으로 ‘아, 난 탈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앞서 한 동창들의 얼굴이 왜 그랬는지 알 듯했습니다.
공포스러운 독재정치하에서도 날 선 말씀을 서슴지 않았던 추기경님. 그 당시 안기부 요원이 당신이 그렇게 정부를 비판하면 신부들의 파일을 다 공개하겠다고 협박을 했지만 ‘마음대로 하라’고 한 추기경님의 서슬 푸른 대응에 꼼짝을 못했다는 일화 등등. 당신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닌 시대를 이끌어가는 큰 그릇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분도 힘겨움이 있었습니다. 불면증. 온갖 고뇌에 시달리면서 얻은 병 아닌 병. 그래서 당신은 하루 세 시간을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선종 10주기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큰 그릇이 나오길 기도해 봅니다.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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