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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9 20:03 수정 : 2019.01.31 15:19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 거부하고
초기교회 공동체 모습 유지하며
예수의 가르침 따라 사는 사람들

2006년 총기 난사 피해 입었을 땐
용서 넘어 오히려 범인 가족 위로

개인보다 공동체 건강·안녕 우선
실패까지 공유하며 단단한 유대감
불평등·소외 확산에 참여자 늘어
고령화 한국 사회에 절실한 가치로

‘공동체를 말하다’ 콘퍼런스

마차를 탄 아미시의 아이들. 아미시 웹사이트 갈무리
과학 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에 살면서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며 단순 소박한 삶을 지켜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마을을 아미시라고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박사학위 연구를 진행한 거투르드 앤더스 헌팅턴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아미시들이 인류 역사에서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는커녕 20년마다 두 배로 인구가 증가하는 뜻밖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아나뱁티스트 콘퍼런스’에서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 선교부 김복기 목사가 발표한 내용이다. 이날 콘퍼런스는 ‘아나뱁티스트들이 살아온 오랜 방식’ <공동체를 말하다!>란 주제로 열렸다. 최근 국내에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마을공동체운동의 원조 격인 아나뱁티스트 콘퍼런스가 열리자 청중 150여명이 참가해 5명의 목사와 교수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열띤 질의·응답을 펼쳤다.

산상수훈 부르심에 응답한 삶 선택

아나뱁티스트는 ‘재세례파’라는 뜻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자발적 의지로 세례를 받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500년 전 루터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운동이 관 주도개혁에 머무르자 초기교회의 공동체적 모습 그대로 살아가겠다고 나섰다. 이들에 대해 발표자인 김난예(침례신학대) 교수는 “산상수훈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로 정의했다.

아타뱁티스트들은 어떤 명분으로도 살상과 총기와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삶을 택해 군부와 가톨릭, 주류 기독교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고 쫓겨 다니면서도 사랑과 비폭력의 삶을 이어오며 인류사회에 큰 영감을 주었다. 2006년엔 미국 필라델피아 아미시의 한 학교에 침입한 범인이 10명에게 총기를 난사해 5명이 죽고, 5명이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범인을 조건 없이 용서하고.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아내와 세 자녀에게 먼저 할애해 달라고 요청하고, 범인의 가족들을 식사에 초대해 위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아나뱁티스트 공동체 콘퍼런스
혼삶 시대에 왜 공동체를 찾을까

아나뱁티스트로는 국내엔 부르더호프공동체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아나뱁티스트들이 있다. 모라비안의 후예로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해 14개 가정씩 모여 개인소유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후터라이트인구는 1980년 2만4천여명이었으나 현재 4만5천여명으로 늘었다. 아미시는 농촌 지역에만 거주하며 자동차 등을 거부한 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건강성과 안녕을 우선시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미시는 1900년엔 6천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33만여명으로 집계된다. 메노나이트는 교회 그룹으로 퍼져 현재 9624개 교회에 146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와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면서 핵가족화와 혼삶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공동체적 삶에 동참하는 이들이 줄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설은주 ‘하늘숲-좋은나무공동체’ 목사는 “관계가 깨져가고 있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고 싶은 욕구의 분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난예 교수는 “현대사회가 물질적 부만을 추구하며 생긴 불평등으로 인한 온갖 문제의 해결책이 공동체에 있고, 특별히 장애인과 노인 등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 않은 사회의 필요성으로 공동체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복기 목사는 “통상적인 조직들은 실패하면 서로 욕하고 흩어지기 마련인데,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공과 실패까지 공유해 왔다”고 지속성의 비결을 설명했다.

갈등과 두려움 넘어 어떻게 함께 살까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 등에서 300여명이 공동체로 살아가는 밝은누리 대표 최철호 목사는 “‘나도 다 해봤는데, 다 부질없는 이야기야!’, ‘생각은 좋은데 현실에 맞지 않아!’라는 생각들은 그 자체가 불신앙, 체념적 삶의 표현”이라며 “일상에서 늘 욕망을 조작하고 불안을 조장해 생명을 고갈시키는 시대 우상이 강요하는 삶에서 탈주해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과 결혼·임신·출산·육아와 수련, 치유, 교육, 노동, 놀이 등 구체적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개인이나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관계망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크리스 라이스 메노나이트 동북아 책임자는 인종차별의 본거지라는 미국 미시시피주 수도 잭슨에서 백인과 흑인들이 섞여 살던 공동체에서 겪은 갈등 사례를 들려주며 화해를 위한 3단계 과정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사회적 긴장과 트라우마의 진실, 억압, 특권을 극복하려면 정면으로 부딪히고,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두번째 진실이 없는 사랑은 거짓이다. 셋째 기독교공동체 화해의 핵심에는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한다.”

고독하고 소외된 노인을 위한 공동체

이날 콘퍼런스에선 아나뱁티스트들이 만든 새로운 공동체들도 소개됐다. ‘그린크로프트’라는 ‘돌봄의 공동체’는 1922년 미국 인디애나주 뉴 칼리슬의 30만평 숲에 설립돼 150명의 메노나이트 도우미들이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배우자를 잃고 홀로 남은 65세 이상 노인들과 함께 총 270명이 살아간다. 또 고센 공동체엔 550명의 전문의료인 및 간호인을 포함해 노인 등 1200명이 살아간다. 공동체 내엔 예배당과 소규모 예배실, 상담실, 도서관, 컨퓨터실, 영화관람실, 오락실, 각종 모임방 등이 있고, 건강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이곳에서 직업을 갖고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자원봉사에 나선다. 김복기 목사는 “돌봄의 공동체는 양로원이 아니라 메노나이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청지기의 삶으로 함께하는 것”이라면서 “이 공동체들은 외진 곳에 있지 않고 도시 끝자락에 있어 도시 내 자녀들 및 친척들과 공동체성을 잃지 않고 연결되게 한다”고 설명했다. 노령화와 혼삶으로 소외와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는 한국사회에서도 절실하게 필요한 공동체들이 아닐 수 없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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