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2 18:56
수정 : 2018.11.22 21:44
[짬] 원불교 원로지도자 이광정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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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로인 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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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산 이광정(82) 원불교 상사는 현존하는 원불교 ‘최고어른’이다.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 대종사-송정산-김대산에 이어 4번째로 종법사가 되어 1994~2006년에 교단을 이끌었다. 그가 최근 <국가경영지혜>(원불교출판사)라는 책을 냈다. 현실정치와 선을 긋기 마련인 종교지도자가 ‘국가 경영’이라니? 그러나 의외는 아니다. 이미 종법사 때 <분단역사 극복의 길>이라는 책을 낸 그는 종법사를 퇴임하면서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고, 그 기도 일념으로 10여 년을 달려왔다. 그 일심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후보로 확정된 뒤 가장 먼저 전화를 한 이가 좌산 상사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2013년 열반한 김혜성 종사와 그의 자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홍석현 전 <제이티비시> 회장의 멘토이다. 홍 전 회장이 한반도 평화운동에 의지를 보이는 것도 그의 영향으로 알려진다. 좌산 상사를 22일 충남 논산시 벌곡면 원불교 삼동원에서 만났다.
“대종사님이 원불교와 교법을 만들 때, 우리끼리만 잘 살자고 한 게 아니다. 온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 나라가 잘되게 하는데 어찌 종교인이라고 책임이 없겠는가.”
그는 책을 쓴 이유를 먼저 ‘책임감’이라고 했다. 책은 ‘정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시작해 정치 체제와 지도자의 요건, 인사의 원칙과 재해 예방까지 안내하고 있다. 강태공이 주 문왕에게 혹은 장량이 한 고조에게 주는 메시지 같다. 책 말미엔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송정산의 <건국론>과 함께 ‘황석공’이라는 도인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비서(秘書)인 <황석공소서>도 번역해 실었다. 이 책은 여러 인연을 통해 벌써 청와대에 1백권, 국회에 2백권이 배포됐단다.
그가 일러주는 말들은 자칫 ‘다 아는 얘기’라고 소홀히 여기기 쉽다. 하지만 늘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어 지도자 개인과 사회의 재앙이 되곤 한다. ‘권력이란 남을 위해 쓰면 무한 복이 되고 자신만 위해 쓰면 무한 독이 되며, 권력은 명예와 재물과 아부가 따르고 마약처럼 중독되기 쉽다’는 말도 그렇다.
그는 ‘지도자란 무엇이냐’란 물음에 “네 가지 실력을 갖춘 자”라고 답한다. 네 가지란 ‘구성원 전체의 집단 일심을 끌어낼 응집력, 구성원 전체의 감동을 끌어낼 감화력, 상반된 의견이나 이해를 조정해 합의를 끌어낼 조정력,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난관도 돌파하며 전진해 갈 추진력’이라고 한다.
4대 종법사 지낸 교단 최고 어른
최근 정치체제와 지도자 요건 등
현실정치 조언 ‘국가경영지혜’ 펴내
종법사 시절 ‘분단 극복’ 주제 책 출간
진보 보수 넘나드는 멘토 노릇
“나라에 대한 책임감이 집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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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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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평생 수행해온 수도자답게 지도자와 경영자가 되려면 5가지 심법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첫째 나만이 아니라 타인과 서로 가꾸며 살아가는 마음, 둘째 이미 안다는 오만을 넘어 사리를 깨쳐가는 마음, 셋째 충언을 소중하게 받아 활용하는 마음, 넷째 옳고 지혜로운 제안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다섯째 받아 활용한 결과에 대한 보상을 잊지 않는 마음’이라고 한다.
좌산 상사는 남북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 남북문제위원회를 만들어 이슈가 있을 때 토론하고 또 토론해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 한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는 또 “현실에선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혼재하기 마련이지만 역량 있는 정치인과 언론은 부정적인 것마저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자꾸 기운을 긍정으로 돌리고 여건을 만드는 지혜를 내, 이 나라의 미래를 열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김정은 북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6·25전쟁에 대해 사과하면 남한 보수의 증오심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며 “독일처럼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될 것을 끝내 사과하지 않아 증오심을 부추기는 일본 지도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사리사욕이나 권모술수를 쓰지 않고 정도로 가려는 것 아니냐”면서 “남북문제야말로 술수가 아니라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지 않으면 풀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와 일자리 정책에서는 국민의 인정을 받지 못한 듯한데 장기적으로 우리가 지향해 가야 할 이상이라도 현실에 바탕을 둬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에게 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사회와 나라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이익만 보면 된다는 소아주의로 아우성만 치고 불만만 내뱉는다면 어느 누가 와도 제대로 될 수 없다. 현실에는 어떤 정책도 완전무결한 건 있을 수 없다. 다 모순이 있게 마련이다. 그걸 대체로 잡아서 한쪽이 미흡해도 대체가 옳으면 합력하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되는 집안, 되는 나라다.”
그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쉽게 못 하는 금융실명제, 김영란법, 인성교육진흥법도 하는 나라 아니냐”며 “자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모든 일은 원인에 따른 결과인데, 여건이 성숙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과욕과 탐욕을 부리는 것이 우리가 모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논산/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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