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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6 19:13 수정 : 2018.10.16 22:01

[조현의 휴심정]
<당신이 옳다> 저자 정혜신씨와 ‘영감자’ 이명수씨 부부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즉각 심폐소생술을 하고 병원으로

밤낮 곁에서 뽀뽀하고 “멋있어” 격려
1주일만에 아무 후유증 없이 ‘부활’

국가폭력 피해자들 속으로 들어가
15년 동안 심리적 전선 참전용사로

‘태극기할아버지’의 ‘나’에 귀 기울이니
과거 상처 토해내며 사과까지 했다

무작정 경청과 호응이 정답은 아니다
존재 자체로 들어가 적정 처방 한다

문제아의 행동까지 동의하진 않지만
인정해주면 안정 찾아 합리적으로

심근경색으로 심정지 됐던 남편 이명수씨와 그를 물리적·심리적 심폐소생술로 살린 치유자 정혜신씨가 서로 “당신이 옳다”며 웃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 정신과의사 정혜신(55)씨와 그의 남편이자 심리기획자인 이명수(59)씨 부부의 집을 찾았다. 집 앞에 서있는 이씨의 얼굴이 가을 햇살보다 따사롭다. 불과 몇 달 전 저승길에 다녀온 모습이 아니다.

지난 5월8일 아침 그는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그는 구급차에 오르자마자 온몸이 새파랗게 변하며 뻗뻗하게 굳었다. 그리고 곧 심정지가 왔다. 아내 정씨가 즉각 심폐소생술(CPR)을 했고, 병원에서 심장 스텐트 시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2만명의 심근경색 환자 가운데 생존율은 7.5%에 불과하다고 한다. 생존하더라도 상당수가 수족마비와 같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그는 일 주일 뒤 병원을 두 발로 걸어나왔다. 아무런 후유증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즉각적인 심폐소생술 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병원에서 심정지가 와서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을 해도 그처럼 회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씨는 이를 “심리적 시피알 덕택”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4시간 아내가 곁에서 지키며 땀을 닦아주고 눈만 뜨면 뽀뽀를 해줬다. 얼굴이 퉁퉁 부은 몰골인데도 체면을 중시하는 나를 생각해서 ‘흉하지 않아’, ‘멋있어’라고 끊임없이 말해줬다. 세 아이와 형과 누나, 조카들까지 손발을 계속 주물렀다. 이들을 보면서 ‘아, 내가 잘못되지는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선을 넘나든 일 주일간 “인간은 의학적 처치도 처지지만, 이런 심리적 지지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완벽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완벽한 심리적 지지를 받으면 다시 심장발작이 와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게 된다”고 했다.

고문 피해자·세월호 유족 등 400차례

이씨를 살린 ‘심리적 시피알’이 뭘까.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해냄 펴냄)가 그 궁금증에 답했다. 이 저서에서 단지 잉꼬부부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서로의 치유자이고 스승이자 도반인 이명수는 ‘영감자’로 저자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 책엔 심리적 내상, 즉 트라우마로 신음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낸 비법이 담겨있다. 그 비법의 핵심은 공감이다. 공감이란 말은 너무도 흔하다. 저자가 정신과의사 수련을 받을 때부터 그 중요성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도 바로 공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혼을 불어넣은 작품의 키워드를 ‘공감’으로 정했다. 그것은 심리적 전선에 참전용사로서 산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심리적 참전 용사로 지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지만, 우연히 만난 ‘진도 간첩조작 고문 피해자’ 박동운씨의 깊은 심리적 아픔을 보고 치유상담에 나선 이래,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는 최전방에 섰다. 고문피해자를 돕는 ‘진실의힘’과 쌍용자동차 해고자 및 가족을 돕는 ‘와락’, 세월호 피해자를 돕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함께 했다.

교련수업에서 부상자 치료 훈련을 받는 것과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전우를 돌보는 것과는 같아도 같은 것이 아니다. 의사 수련시절 그가 들은 공감과 참전용사 정혜신의 공감 역시 같을 수가 없다. 그는 국가폭력과 주위의 2차, 3차 가해로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죽어가던 이들 속으로 들어가 집단상담을 했다. 이명수씨는 무려 400회에 이르는 그런 상담 현장에서 ‘어떻게 심리적 심정지 상태에 있던 이들의 심장이 다시 뛰는지’ 지켜본 증인이다.

‘그럴 수 있어…네 감정이 옳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했길래’이다. 정혜신씨가 말하는 것은 무작정 들어주기만 하는 경청이나 무작정 호응만 해주는 공감이 아니다. ‘적정’ 처방이 필요하다. 그는 발이 가려운데 구두를 긁지 않는다. 가려운 맨살을 만진다. 맨살이란 존재 자체다. 아픈 이의 마음과 감정이다.

“몇 시간이나 얘기를 들어줘도 말하는 사람도 경청한 사람도 개운치 않은 것은 과녁이 정확치 않아서다. 사건이나 상황 자체에 휘둘려 존재 자체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로 진입했을 때 치유된 건 국가폭력 피해자들만이 아니었다. 정혜신씨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행패를 부리던 ‘태극기 할아버지’ 옆에 앉아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으며 그의 존재에 집중했을 때 할아버지는 드디어 ‘세상’이 아닌 ‘나’의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과거 상처들을 토해내며 사과까지 했다. 그건 정혜신씨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충고·조언·평가·판단’하지 않고, 그 할아버지의 가슴으로 직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처럼 이웃과 친구와 가족과 배우자들에게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사람들의 ‘나’에 초점을 맞춰 장대비 같은 공감을 퍼부으면 죽어가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이 책은 학교에서 친구를 때리고 문제를 일으켜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훈계를 하는 따위의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그때조차 사건이나 상황의 포탄을 피해 그의 감정에 주목해 듣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행동까지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있다’, ‘네 감정이 옳다’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런 공감을 받은 후에야 안정감을 찾은 아이는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존중과 사랑의 꽉 찬 심리적 곳간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전선에서 이제 1.5진 혹은 2진으로 물러나 있는 요즘 부부는 시골집에서 배고픈 길냥이들을 돌보는 재미로 소일한다. 하지만 오직 공감해주고 돌볼 뿐 인간의 손길을 두려워하는 길냥이들에게 손길이나 재롱 같은 건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세 아이를 돌보며 그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세 아이 중 한 아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를 마쳤지만, 다른 한 아이는 대졸 무직이고 또 다른 아이는 고졸로 전자제품 판매원이다.

그들의 진로와 직업에 대해서 한번도 강요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 배우자에 대해서도 오직 자신들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부와 아이들은 갈등 없이 사랑할 수 있었고 언제나 즐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에너지 손실이 없이 ‘심리적 곳간’이 찼기에 트라우마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도 있었다. 햇살 좋은 이 집 마당에서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던 길냥이가 말하는 듯 했다.

“맞아. 치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야. 정혜신·이명수, 당신들이 옳아.”

양평(경기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서울시민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 및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그리움을 만지다>란 전시회를 하며 대화하는 정혜신 박사. 치유공간 ‘이웃’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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