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27 19:38
수정 : 2018.07.2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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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시일 내에 진퇴 여부 결정'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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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일째 단식’ 설조 스님, 설정 스님쪽 합의 불이행 비난·단식 중단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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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시일 내에 진퇴 여부 결정'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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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설정 스님 퇴진과 종단 개혁을 둘러싼 갈등의 출구가 열릴듯 열릴듯 열리지 않고 있다.
설정 스님이 27일 오후 3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속한 시일 내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한 길을 진중히 모색해 진퇴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종단 주요 구성원분들께서 현재의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뜻을 모아주신다면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설조 스님이 총무원 앞 우정공원 천막에서 ‘친자 의혹’ 등을 받는 설정스님의 사퇴와 종단 개혁을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한지 38일 만이다.
설정 스님은 기자회견 뒤 인근 단식장으로 설조스님을 찾아 “나는 마음을 비웠다. 스님의 건강이 걱정된다. 건강을 챙겨라”고 말했다.
그러나 설조 스님은 사퇴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단식을 중단할 뜻이 없다는 입장이다. 적폐청산시민연대 관계자는 “설정스님쪽과 원장 퇴진 등을 놓고 대화를 했으나 합의내용 대신 모호한 내용만은 언급했다”고 비판했다. 설정 스님의 ‘사실상 용퇴’를 발표해야 설조 스님이 단식을 중단할 명분이 생기는데, 어정쩡한 언급만으로 단식을 중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조 스님은 유래 없는 폭염 속에서 장기 단식으로 체력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어 더 이상 단식을 지속할 경우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조계종 안팎에서는 설정 스님의 총무원장 용퇴는 시간이 문제일뿐 거스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방송통신대 졸업을 서울대 졸업으로 학력을 속인 것만도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종단 지도자로서 오점을 남긴데다 독신비구를 표방한 교단에서 친자의혹을 명쾌히 해명하지못하면 총무원장직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사태를 관망하던 비구니 스님들 3백여명이 설정 스님 퇴진과 종단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낸데다 이날 선방에서 참선하는 선승들의 모임인 수좌회 소속 스님들이 조계사 대웅전에서 108참회를 하고 설정 스님을 만나 퇴진을 요구하며 8월말 전국승려대회에 동참하기로 해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적폐청산시민연대는 그런 상황임에도 설정스님이 설조스님쪽과 합의한 내용을 공표하지 못하고 후퇴한 데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때문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적폐청산시민연대는 자승 스님의 지원으로 당선된 설정 스님이 지난해 11월부터 총무원장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본사주지들과 종회의원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강한 실세가 자승 스님이라고 보고 있다.
적폐청산연대의 한 관계자는 “자승 스님이 자기 주도 아래 설정 스님 이후의 종권을 창출하기 위해 설정스님과 설조스님의 합의 이행을 막후에서 방해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사태 속에서도 조계종의 법원격인 초심호계원이 지난 총무원장 선거 때 설정 스님과 맞붙은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공권자격정지 5년 징계를 내린 것도 설정 스님이 퇴진할 경우 치러질 총무원장 선거에서 수불 스님의 재출마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적폐청산연대의 공격 목표가 다시 전원장인 자승 스님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종단 안팎에서는 현 종단 구조상 설정 스님이 퇴진해도 자승 스님을 축으로 한 본사주지들과 종회의원, 원로의원으로 이어지는 기득권 카르텔의 구조가 뒤바뀌는 것은 쉽지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미 약점이 노출돼 권력을 행사하기가 쉽지않은 설정 스님의 사퇴 전에 기본적인 개혁안을 관철시키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설조스님의 단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적폐청산시민연대가 설정 스님쪽과 대화 창구를 열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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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조 스님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농성장에서 스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수 87세로 알려진 설조 스님은 지난달 20일 종단 적폐청산과 총무원장 설정 스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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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정 스님쪽은 이미 지난 20일 막후 대화를 통해 합의된 내용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다가 취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종단 내에서 교권혁신위원회를 실제적으로 이끌어가던 혁신위원회 소위원장 도법 스님이 업무를 중단하고 실상사로 내려갔고, 총무원 대변인격인 기획실장 일감 스님도 사표를 내고 낙향하면서 반발했다. 설정스님은 당시 종회 직능직 의원 네자리 추천권과 각종 불교단체 대표 겸직 등의 권한을 내려놓고, 돈이 없는 스님들도 본사 주지와 종회의원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겠다는 내용등을 밝힐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언론사에까지 공표했던 기자회견을 막판에 취소한데는 설정스님의 본사인 수덕사의 상좌를 비롯한 측근들의 입김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설정 스님이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조만간 진퇴를 결정하겠다’고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선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설조 스님이 단식을 끝내는 명분이 될만한 구체적인 사퇴약속을 하지 않음으로써 설조 스님이 위독해질 경우 더 거센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설정 스님의 거취는 8월말이 되면 어떤식으로든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다. 교권혁신위원회가 이미 8월말까지 총무원장을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밝힌데다 조계종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종정인 진제 스님도 최근 “종단 혼란사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오는 8월 말까지 나올 것으로 믿는다”며 설조 스님 단식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이미 설정 스님의 용퇴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설조스님의 단식과 투쟁이 실질적인 종단 개혁으로 이뤄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설조 스님의 단식으로 조계종단 내부 적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실제 불교계 내에서 적폐청산연대가 불심을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들이 거대 권력과 싸우면서 문재인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사회단체 및 타종교인들과 연대해 종단을 비판하는데 대해 불자들이 보이는 거부감도 적폐청산연대로서는 부담이다. 신군부에 의한 10.27법난등 외부권력에 의해 전통불교가 유린 당한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이용선 시민사회수석은 지난 20일 설정 스님과 설조스님을 연달아 찾아 “기본적으로 정부와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며 “종단 내부에서 스스로 노력해 정리되리라 믿으며 정부는 한쪽 편에 편향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고, 이날 설정 스님과 설조 스님을 찾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종교문제는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한다”는 정교분리 원칙론을 재확인했다.
설정 스님이 용퇴할 경우 종단은 60일 이내에서 차기 총무원장 선거를 치뤄야한다. 적폐청산연대는 설정 스님의 용퇴 뒤 기득권세력의 종권 연장을 막기 위해 전국승려대회를 통한 종회 해산을 모색할 수도 있다. 종회는 원로의원들 3분의2가 찬성하고 종정이 재가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종단 원로들이 개혁 의견을 반영해 개혁을 단행해줄 것이란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적폐청산연대는 총무원장 직선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원로들일수록 선거가 가져온 폐해를 강조하며 선거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않은 때문이다.
따라서 설정 스님의 용퇴와 설조 스님의 단식 이후가 더 중요한게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아픔을 실질적인 종단 개혁으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불자 대중들이 열린 공론을 통해 지혜를 도출해내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지 ‘천년 불교’의 내공이 더욱 절실한 때가 오고 있는 셈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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