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7 04:59
수정 : 2018.02.27 11:02
성 문제에 비교적 관대한 처리 관행
사건 일어나도 쉬쉬하거나 미봉책
가톨릭 수원교구 한 신부가 해외 선교활동 당시 봉사자에게 저지른 성추행 사실이 폭로된 데 대한 일반인들의 충격이 작지 않다. 지금까지 개신교 목사들과 불교 승려들에 비해 가톨릭 신부들의 성추문 사례가 알려진 경우는 드물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신부들이 타 성직자들보다 도덕성 등에서 더 신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톨릭 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을 비롯한 성 관련 사건이 잇달아 불거져 로마 교황청의 최대 골칫거리로 부각된 지 오래고, 한국에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사제들의 성추행과 성폭행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 사제는 “한국 가톨릭에서 성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처리해온 관행이 있다”며 “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부분의 교구가 해당 사제를 외국에 있는 교민 대상 성당이나 선교기관에 발령을 내는 식으로 미봉해왔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교황청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해 2011년 신앙교리성에서 ‘성직자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에 대한 처리지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나라별 지침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가톨릭주교회의도 2012년 예방 프로그램 등 지침을 정해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 관계자는 “스님들의 성추문 사건이 터질 경우 사건을 조사하고 진위를 확인하는 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직무정지 등의 조치를 먼저 취한 뒤 사후 조사를 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성희롱 예방교육은 교육원 차원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 문제와 관련해 종교계는 그동안 사건을 은폐하거나 눈가림식 미봉책으로 대처해왔다. 불교계의 경우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이 2016년 8월 재단법인 소속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11일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성범죄방지 프로그램을 수강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선학원 이사회는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어 법진 스님 건에 대해 ‘성추행은 아니다’라는 보고를 채택했다.
개신교에서도 ‘스타 목회자’였던 전병욱 목사가 서울 용산 삼일교회에 재직하던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여러 건의 성추행이 고발돼 기독교공동대책위까지 꾸려지고, 사실상 대법원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그가 속한 예수교장로회 합동노회나 총회 등이 재판을 유야무야로 만들어버린 상태다. 전 목사는 권고사직 1년 반 만에 새 교회에서 목회를 재개했다.
종교계의 성추행과 성폭행은 성직자와 신자 간의 권위주의적 구조에서 기인하는 만큼 처벌 못지않게 각성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정직윤리운동위원장 신동식 목사는 “신자들 중에는 여전히 ‘목사를 통해 복이 들어온다’는 식의 샤머니즘적 신앙으로 ‘목사에게 저항하면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기독교는 간음이 죄라고 분명히 하고 있고,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을 통해 활동하지 않는다는 각성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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