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휴심정]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마을공동체네트워크
지난 2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산동 신흥마을의 본량공동체네트워크 사람들. 사진 조현 기자
|
오지 산골 같은 마을이 숨어 있다 산-강-들판이 어우러진 천혜의 땅
아이들 웃음꽃 피며 천지개벽 굴러온 돌 11집과 박힌 돌 30집
어깨동무하고 새롭게 흥하는 마을로 잔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아이들,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며 사는 꿈은 도시인이라면 한번쯤은 꾸어봤을 게다. 하지만 대다수는 꿈만 꾸고 만다. 그런데 이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도시의 직장을 떠나지도 않고서 말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산동 신흥마을엔 이렇게 ‘꿩도 잡고, 매도 잡은’ 이들이 살고 있다. 본량마을공동체네트워크(본마공) 사람들이다. 광주광역시 광주송정역에서 차로 영광통을 빠져나와 10여분 만에 본량초등학교 뒤편으로 돌아가니 평화로운 시골마을이 숨어 있다. 시내에서 이토록 가까운 곳에 어떻게 오지 산골 같은 느낌의 이런 마을이 있었을까. 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멋들어진 집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퇴락한 시골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흥하는’(신흥) 마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마을도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가 늘어가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광산군이 광주광역시에 편입되기 전 광산군 본량면이었던 이 지역은 용진산을 등에 업고 앞엔 너른 들판과 황룡강, 어등산을 마주한 천혜의 길지다. 그런데도 광산구 유일의 소외지대로 남아 본량동초·본량서초, 본량중학교가 폐교되고, 유일하게 남은 본량초등학교마저 학생 수가 30여명밖에 안 돼 폐교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본량초교는 이제 학생이 80여명으로 늘었다. 본마공 11가구 41명이 이주해오면서 아이들이 늘어난데다, 소문을 듣고 광주시내에서도 전원 속 본량초로 아이들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처음엔 공동체마을 꿈도 못 꿔 신흥마을은 새로 온 11가구가 기존마을 30가구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이곳 역시 원주민은 대부분이 노인들이지만 30~40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며 천지개벽했다. 지난 20일 마을 골목에 들어서니 사람들은 이웃과 마주칠 때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길거리에 선 채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여자아이는 이웃집 언니가 다가오자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처럼 얼싸안고 얼굴을 비빈다. 본마공은 광주시내에서 육아를 위한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햇살가득’ 공동육아를 하던 이들이 모태가 되었다. 조합원들이 광주시내에 있던 어린이집을 본량 송치마을에 옮겨 시작한 게 2006년이었다. 그래서 신흥마을로 이주하기 전에 이미 ‘햇살가득’을 마친 아이들을 본량초등학교로 보낸 회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공동체마을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선구자인 박수미씨네가 두 아이를 데리고 2009년 12월 본량초교 뒤인 이 마을에 들어올 때까지만도 이런 공동체마을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어 수미씨 집을 와본 햇살가득 사무국장 박은정씨네가 2011년에 들어오고, 햇살가득 교사였던 최혜영씨네와 이겨레씨 가족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네 집이 되면서부터 공동체에 대한 책도 읽고 여기저기 공동체마을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땅 200평을 빌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논농사를 짓다가 모두 몸살에 걸려 공동체가 초장에 와해될 뻔했다”며 웃음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네 어르신들에게 농사를 배우면서 어르신들과 한결 가까워졌다.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이 함께 해보자는 돌돌문화제도 하고, 마을정자에서 음악회도 했다. 복날이 되면 닭백숙을 해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대접도 했다. 광주시내 공동육아 조합이 모태
대부분 30~40대 맞벌이로 출퇴근 폐교 위기 초등학교도 북적북적
아이들은 사시사철 들로 산으로 문화제·음악회 열고 툭하면 번개파티
내집 네집 따로 없이 날마다 축제
광주시내에서 한 집 두 집 이주해 오며 새롭게 변한 신흥마을. 본량마을공동체네트워크 제공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