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이야기
사랑하는 가족이 떠난 장소가 꼭 추억의 장소이거나 그리운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장 혐오하는 곳,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기도 한다. 사별가족 모임에 오시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남편이 떠나간 그 병원 근처는 가고 싶지도 않아요.’ ‘난 그 병원 안 쳐다보려고 일부러 돌아서 다녀요.’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신앙을 가진 이들이건 신앙인들에게는 소중하게 여기는 장소가 성지다. 신앙인들에게 특별한 장소이고 늘 가고 싶은 장소다. 그렇다면 가장 사랑했던 가족, 친구들이 마지막을 머물렀던 병원, 병실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 성지인가? 예수님, 성모님, 부처님의 흔적이 닿았던 곳이 성지라면 피와 살을 함께 나누고 수십년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살던 내 가족이 마지막을 보낸 병원은 내게 당연히 성지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마지막 지내던 병원에서의 나날들이 좋은 추억 한두 가지쯤이라도 만들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임종이 중환자실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는 더욱더 쉽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에 집이 있던 어떤 할머님은 서울의 원자력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포천 모현으로 오셔서 임종을 맞이하셨다. 그분의 따님은 현재 일본에 살고 계시는데 해마다 3월이 되면 한번쯤 한국을 찾으신다. 우선 제주도에 가서 어머님 제사를 지내고 포천 모현에 오셔서는 어머님이 마지막 머물렀던 방을 돌아보시고 정원에 나가서 어머님과 함께 거닐었던 추억을 되살리며 산책을 하신다. 그러고는 끝까지 무리한 치료를 권하지 않고 좋은 병원을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원자력병원에 가서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일본으로 가신다.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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