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12.26 18:39 수정 : 2017.12.26 20:01

조현의 휴심정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선물할 김장을 하고 있는 세겹줄교회연합 정진훈(맨 왼쪽)·나기수(가운데)·이상연 목사.

<9> 경기 고양 세겹줄교회연합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은 고양시에서도 변방이다. 수도권 3호선 전철 지축역에서도 마을버스로 15~20분쯤 더 들어가야 한다. 이곳에서 원당이나 행신을 가려고 해도 버스로 한참이나 나가야 해서 어지간한 건 고양동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외딴 지역이다. 여기에 3만3천명이 살고 초등학교 둘, 중학교 하나, 고등학교 하나가 있다. 그러나 도서관 하나, 청소년 시설 하나 없어서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 말고는 갈 곳조차 없다.

그래서 ‘마을카페 다락’은 사막의 오아시스다. 초·중·고생들이 방과후에 함께 모여 공부하고, 함께 여행을 한 뒤 찍어 온 사진을 놓고 발표도 한다. 이 동네에 묘가 있는 최영 장군에 대한 창작극을 만들기 위해 무용·노래·작곡·전통무예·보컬팀을 꾸려 내후년 공연을 목표로 연습도 한다. 인근 중부대학교 실용음악과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학생들도 자원봉사로 와서 실용음악과 만화에 관심 있는 아이들을 모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주 목요일 ‘떡볶이 데이’엔 봉사자들이 만들어준 떡볶이를 먹으며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곳도 다락이다.

정진훈, 나기수, 이상연 목사 교회
하나하나는 신자 10~20명 불과

‘세겹 줄은 끊어지지 않을 것’
성경 구절 따 마음 합쳐 나섰다

마을카페 열어 아이들 오아시스로
사랑방도 운영해 주부들 동아리

노인대학 차려 누구에게나 문 열어
노래하고 강좌 듣고 군고구마도

저마다 가진 재주로 악기·공예 모임
시민단체도 꾸려 숙원사업 척척

교회로 끌어들이려고 용쓰기보다
마을로 나가서 더불어 함께

아이들만이 아니다. 주부들은 주부들대로 반찬 잘 만드는 동네주부를 중심으로 반찬만들기 동아리를 꾸리고, 재봉을 잘하는 주부를 강사로 한 소잉 동아리도 꾸렸다. 그렇게 10개 동아리에서 주부들도 서로 배우고 마음을 나눈다.

이런 ‘고양동 사랑방’을 운영하는 곳은 고양시도, 덕양구도, 고양동주민자치센터도 아니다. 큰 교회도 아니다. 신자가 10~20여명에 불과해 자립도 못한 조그만 세 교회가 힘을 합쳐 운영한다. 에덴정원교회 정진훈(53) 목사와 생수교회 나기수(60) 목사와 고양벧엘교회 이상연(47) 목사는 2013년 ‘세겹줄교회연합’을 꾸렸다. ‘세겹 줄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란 성경 구절을 딴 것이었다. 정진훈 목사는 “큰 교회들처럼 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 목사 부부인 6명의 인력이 있고, 세 교회 공간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서라도 뭔가 마을을 위해 일을 해보자고 출발했다”고 말했다.

자존감 세워주려 한 학기 1만원

‘마을카페 다락’과 함께 시작한 게 노인대학이었다. 고양동엔 4년 전까지 노인대학 하나 없었다. 고양동에서도 교외인 신성빌라 옆에 있는 생수교회에 차려진 노인대학엔 무교회인, 다른 교회 신자, 가톨릭 신자, 불교 신자 등 20명 안팎이 1주일에 한 번씩 나온다. 한 학기 등록금이 1만원이다. 노인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받는 돈이다. 생수교회 안엔 장작이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고, 대형 난로에 군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추우면 더 몸이 아픈 노인들을 위한 배려다. 교회 옆 빈터엔 토종닭 20여마리를 나 목사가 기른다. 매주 두 포대씩의 사료를 사기에도 벅찰 만큼 교회 살림이 어렵지만, 난로에 구운 계란을 좋아하는 노인들을 위해선 닭이라도 기르지 않을 수 없다.

마을카페 다락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사진 다락 제공

이곳에 나오는 노인 중엔 승합차에 타는 것마저 힘겨워할 만큼 몸 상태가 안 좋은 이들도 있다. 탁자를 놓고도 부축해야 겨우 차에 오르는 노인은 “다 죽은 송장을 뭐 하러 이렇게까지 데려오느냐”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면서도 고마운 내색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고양동에도 노인대학이 4개나 생겼고, 큰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서는 불고기를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해서 퍼주기도 한다지만, 이곳 노인들은 해를 거듭해 이곳 노인대학을 고집한다.

“혼자였으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거동이 불편한 한 노인은 이곳에 와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다 보면 안 올라가던 손이 올라가니 신기하다고 말한다. 노인들은 이곳에서 건강강좌도 듣고, 노래와 율동도 배우고, 비누 만들기도 하고, 웃음치료도 하고, 건강강좌도 듣는다. 노인들은 12월 들어 방학이 됐는데도 ‘내년 3월 개학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해 한글서예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연중무휴 노인대학이 된 셈이다. 나 목사는 “이렇게 돌봐도 이분들이 우리 교회에 오는 것도 아니어서 힘이 들기도 했는데, 정이 고픈 노인들을 보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행하는 이 일이야말로 예수님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그래도 혼자였으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세겹줄’로 함께하니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겹줄교회연합이 또 심혈을 기울인 게 ‘행복한 고양동 만들기’였다. 일산이나 행신, 원당에 비해 인력 인프라가 부족함에도 이 중에서 뭔가 재주가 있는 이들을 발굴해 그들을 중심으로 악기와 공예 등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10개의 동아리가 꾸려져 한 해에 연인원 1천여명이 함께했다. 기타 치는 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이상연 목사는 “처음엔 사람들이 한두 달 하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기타를 계기로 모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함께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망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다락 확장비는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이런 동아리 활동 중에 고양동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건학연’(건강한 학교환경 만들기 학부모연대)도 탄생했다. 고양동은 도와 시의 배려도 못 받으면서, 서울시와 고양시내에 들어가기 어려운 기피시설들만 보내려 한다고 주민들은 분노한다. 그런데도 이에 대응할 변변한 조직 하나 없었지만 건학연이 생기면서 동물화장장과 동물건조장, 레미콘공단도 막아냈다. 대신 숙원사업인 도서관은 유치했다. 건학연이 늘 모이는 곳도 마을카페 다락이다.

다락은 고양동 청소년과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40여평의 지금 공간을 두 배로 늘리는 공사 중이다. 세겹줄교회연합의 힘으로는 임대료와 난방비, 관리비까지 월 200만원도 마련하기 어려워 시와 교육청 프로그램 운영비 등으로 겨우 유지해왔다. 그런데 확장하면 보증금 4500만원에 월 400만~450만원을 감당해야 하니 부담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의외로 학부모들이 한 계좌 5만원씩의 출자금을 십시일반 내줘 3천만원이 마련됐다. 그래도 부족한 1500만원은 다락을 확장 개원하는 오는 30일 바자회를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려고 용을 쓰기보다는, 마을로 나가서 함께하는 작은 교회 목사들이 있어서 고양동이 살 만한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끝>

고양/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조현의 휴심정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