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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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서 4년간 신학대 총장
‘예장통합’ 사무총장도 지내 “한국 교회, 냉전의식 노예상태
사회적 평화 만드는 데 앞장을
지역에서 교회연대 강화할 터” “너무 두려웠다. ‘과연 어디를 향해 총을 들어야 하나’란 의문 때문이었다.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나도 군인인데 군대를 향해 총구를 겨눌 수도 없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두려움으로 기도했을 때 ‘총을 버리고 시민과 군 사이에 서라, 하나님은 그 사이에 계신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행히 출동명령은 떨어지지 않아 그는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그는 강원도 최북단 전방부대에 배치됐다. 군사분계선 너머는 지뢰밭이었다. 밤에 이상한 기척이 있으면 그 지뢰밭으로 들어가 확인해야 했다. 그런 작전 중 공병하사가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자 현장에서 자살하고, 중대장이 실명했다. 사고 직후 그는 4시간을 기어 현장에 도착해 총을 수거해 왔다고 한다. 지뢰를 밟은 소대장을 속초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동공이 풀려 숨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는 숙명처럼 필리핀에서도 그런 고난의 현장을 지켜봤다. 자기가 맡은 신학교를 빈민촌인 몬탈반으로 옮긴 그는 정권과 결탁한 이들이 저지르는 청부살인의 만행을 지켜보았다. 그런 만행을 고발하다가 군인으로 추정되는 4명의 괴한에 의해 살해된 알베르토 라멘토 천주교 주교의 추도회엔 전교생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이를 위험시하며 비난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여정은 종교적으로는 ‘치유자로 쓰기 위한 신의 단련’으로 해석될 만큼 역동적이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한국 교회가 냉전의식의 노예 상태에 있다”고 일갈했다. 그리고 “분단과 냉전의 문화를 극복하고 사회적 평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의해 해석된 복음을 절대진리화하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이다. 복음 해석에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수밖에 없더라도 그것을 실천하고 적용할 때에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한다.” 그는 이처럼 ‘민족공동체의 화해와 치유’를 견인하는 것과 함께 ‘한국 교회의 일치와 변혁’을 이루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했다. 그는 명성교회 부자 세습과 관련해 “처음부터 교회는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성장에만 집착하면서 생긴 소유욕을 신학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변혁 의지’를 내보였다. 그러나 새 총무의 의지에도 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국 교회의 일치와 변혁을 견인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민주화운동 당시만 해도 분명한 몫이 있었던 이 단체가 지금은 수족은 없고 머리만 있어 성명서를 내거나 단체를 유지하는 것 외엔 별 역할이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이 총무는 “지역에서 교회 연대를 강화하겠다”며 27일부터 각 지역 바닥 교회들을 훑으며 ‘지역 목회자’들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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