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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9 20:33 수정 : 2017.11.29 20:37

[짬]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땅끝 해남의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산사를 에워싸고 있는 달마산을 배경으로 섰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마치 물이 계곡을 따라 휘감아 돌듯, 그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산길을 만들고 싶었다. 이름도 미리 정했다. ‘달마고도’(達摩古道). 달마의 원음은 ‘다르마’로 이는 부처의 ‘법’이다. 법(法)을 파자하면 ‘물 수’(水)와 ‘갈 거’(去). 물이 흘러내려가듯 거침이 없고, 공평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한반도 땅끝인 전남 해남의 달마산에 최근 만들어진 둘레길인 달마고도는 아주 원시적인 공법으로 탄생했다. 산길을 만드는 데 투입된 기계는 전혀 없다. 삽과 호미, 지게, 그리고 손수레 정도. 날마다 40명이 250일 동안 손으로 산길을 만들었다. 천년고찰 미황사에서 시작해 달마산을 감아도는 18㎞ 거리의 절반은 이미 조성된 길이었고, 절반은 새로 만들었다.

지난 25일 미황사에서 만난 미황사 주지 금강(52) 스님은 둘레길 공사의 총감독이었다. 그는 포클레인 같은 효율적인 장비의 사용을 금지하는 대신 미련하고도 원시적인 맨손공법을 택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자연을 가능한 한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천년고찰 품은 땅끝 달마산 돌아 18㎞
울창한 숲·해안 사이 ‘명품 둘레길’
삽·호미·지게·손수레로 250일
“자연에 깃든 명상길 만들고 싶어”

100여년 버려졌던 산사도 89년 ‘맨손 재건’
17년째 주지로 다양한 문화행사로 대중공양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새로 낸 달마산 둘레길 ‘달마고도’를 걷고 있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지난 18일 개통된 달마고도는 벌써부터 남도 명품 둘레길로 떠오르고 있다. 백두대간의 남쪽 끝인 달마산 기슭을 한바퀴 도는 달마고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12개의 암자를 끼고 있는 숲길로 걷기와 명상을 함께 할 수 있어 인적이 몰리고 있다. 산책하면서 소사나무와 편백나무 등 산림 군락과 달마산 동쪽의 땅끝 해안 경관도 볼 수 있다. 한바퀴 도는 데 6시간 정도 걸린다.

금강 스님은 “비교적 험한 바위산인 달마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산에 인공적인 안전시설을 만들며 산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워 둘레길을 만들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굳이 달마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단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절 달마고도를 만드는 데 적극 도왔다.

“자연을 망가뜨리지 않고, 인간이 자연에 깃드는 환경을 만들려고 애를 썼어요. 돌 하나하나를 손으로 날라 길을 만든 셈입니다.”

금강 스님은 폐가 수준으로 낡았던 미황사를 재건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세워진 미황사는 한때 스님이 400명에 이를 정도로 큰 절이었다. 하지만 100년 전 시주금을 모으려고 배를 타고 나갔던 스님 등 40명이 풍랑에 전원 익사하는 비극을 겪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고, 한국전쟁 때 빨치산을 숨겨주었다고 해서 주지 스님이 총살을 당하며 버려진 절이 됐다고 한다. 금강 스님은 1989년부터 2년간 날마다 직접 지게에 돌을 날라 담을 쌓으며 미황사를 되살렸다. ‘지게 스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0년부터 17년째 주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황사를 재건했듯이, 이번엔 달마고도를 맨손으로 만든 것이다.

“아주 길게 호흡을 하며 산길을 걸어야 합니다. 길게 숨을 들이쉬면 산속의 청량한 기운과 맑은 산소가 들어옵니다. 또 들이쉬는 것보다 두배 정도 길게 내쉬는 것이 좋습니다. 길게 내쉬면 몸속에 있는 악취와 독소, 나쁜 감정의 찌꺼기가 배출됩니다.”

금강 스님은 고교 1학년 때 출가했다. 이미 학교에서 참선반 동아리를 만들 정도였고, <육조단경>을 읽고 있던 그는 절에서 숙식을 하며 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 “은사 스님의 아침공양을 준비해놓고 학교에 갔어요. 아마도 절대적인 자유가 그리웠나 봐요.”

해남 대흥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1987년 민주항쟁 때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광주전남본부 집행위원을 맡았고, 90년대의 불교 종단 개혁 운동에도 공동대표로 적극 활동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외국인들을 위한 템플스테이도 열었다. “그때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속하는 미황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겠다고 신청하니, 조계종단에서 어처구니없어했어요. 설득했어요. 외국인들에겐 그리 먼 거리가 아니고, 오히려 시설이 좋은 호텔보다는 땅끝에 있는 미황사가 매력적일 것이라고.” 스님의 예측은 적중했고, 지금도 해마다 외국인 500여명, 내국인 4000여명이 템플스테이에 참가한다. 달마다 7박8일 일정의 수행 프로그램인 ‘참사람의 향기’도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8일 동안 묵언하면서 아침엔 죽, 점심엔 발우공양, 저녁엔 당근주스 한잔 마시며 참선을 한다. 지난해 4월엔 경내 들머리 누각 자하루를 ‘자하루미술관’으로 꾸며 전시회를 열고, 해마다 10월엔 국내 최대 탱화를 모시는 ‘괘불재’와 ‘음악회’를 여는 등 문화를 통한 대중공양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지면 자유로움이 밀려옵니다. 자유로움을 느끼면 수많은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어요. 그러고 달마고도를 천천히 걸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희망을 찾을 수 있어요.” 금강 스님의 바람은 명쾌하다. 온 국민을 수행자로 만들고 싶단다.

해남/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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