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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9 09:53 수정 : 2017.07.19 10:39

‘전환마을은평’ 가꾸는 소란씨

농업문명 중심으로 생명력 복원
‘퍼머컬처’라는 생태철학 바탕

기존 마을을 생태적으로 바꾸는
공동체운동의 새로운 흐름

그가 가는 곳은 어디나 장터
소란스럽다고 붙여진 이름이 소란

여러 스킨십을 통해 몸과 마음을 풀어 관계의 벽을 넘도록 유도하는 ‘전환마을은평’ 대표 소란씨. 사진 조현 기자

서울 은평구 구산동 일대에선 한 달에 두세 번은 살풀이춤이 펼쳐진다. 몸에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춤으로 풀어내는 공동작업이다. 작은 공간에 수십 명이 모여 서너 시간씩 춤명상을 한다. 나무토막 같은 몸치라도 좋다. 남 앞에선 절대로 망가질 수 없는 뻣뻣한 사람들도 일단 눈 딱 감고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놀라운 변화를 체험한다. 어느 순간 몸에 쌓인 분노와 상처와 두려움까지 ‘훅’ 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웃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가까이하기엔 너무도 먼 당신’도 ‘함께해도 좋을 벗’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처럼 소란한 축제를 만드는 주인공이 바로 ‘전환마을은평’ 대표 소란(41)씨다. 본명은 유희정인데 친구들이 그가 가는 곳은 늘 장터처럼 시끌벅적해진다고 붙여준 활동가명이 ‘소란’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서울 은평에 정착한 지 불과 3년 만에 이 일대가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17일 전환마을은평의 센터 격인 은평구 연서로15길에 있는 ‘밥풀꽃’으로 소란씨를 찾았다. 전환마을은평에서 운영하는 소박한 식당이기도 한 이곳이 이 소란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산파다.

운동권으로 살다 지쳐 영국 유학

소란씨는 대학생 때 노동현장에 나가 일하고, 2000년대 초엔 여성해방연대를 만들어 급진적인 영페미니스트 운동을 한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운동조직 안에서도 성폭력 문제가 적지 않았던 당시 그는 가해자들을 주로 상담했다. 피해자의 상처 치유도 시급하지만 가해자의 불건강한 상태를 치유해 건강한 공동체 멤버로 돌려보내는 것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해자들을 오랫동안 상담하는 사이 자신의 심신도 지쳤다. 자신의 치유가 시급해진 그가 풍광 좋고 쉬기 좋은 곳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곳이 생태주의자의 고향 슈마허대학이 있는 영국의 토트네스란 마을이었다.

그는 2009년부터 슈마허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면서 3년간 토트네스 마을운동가로 활동했다. 토트네스는 전환마을운동의 산실이었다. 전환마을운동은 최근 10여년 사이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생태공동체운동의 새로운 흐름이다. ‘계획적인’ 생태공동체마을들을 만들기엔 땅값이 너무 올랐기에, 새로 마을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마을들을 생태적으로 전환시키자는 운동이다.

전환마을운동은 퍼머컬처(Permaculture)란 생태철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퍼머컬처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농업문명을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이 본연의 생명력을 복원해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다.

토트네스에 정착해 살고 싶었던 그를 다시 한국으로 끌어들인 것은 2010년 그의 고향 강화도에서 시작된 구제역이었다. 강화도에서 소를 키우며 생태적인 삶을 살던 작은어머니가 어느 날 구제역이 발생해 기르던 소들이 하루아침에 도살당하자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한국을 오가며 고민하던 그에게 슈마허의 은사는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답이 없다”며 “뭔가 바꿔보고 싶다면 현장으로 가라”고 권했다.

다양한 학교 열어 함께 공부하고

자투리땅과 텃밭에 농사지어

간장 된장도 담가 먹고 팔고

일반인 대상 밥풀꽃 식당도 운영

따로 리더나 위계질서 없이

활동가 10명 등 100여명이 함께

누구든 뭐든 해보고 싶으면 당장

하다 안되면 다른 방식으로 얼른

화관을 만들어 쓰고 달밤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 ‘전환마을은평’ 제공

금산·남양주·영암 등 전국 확산

그는 공유지를 퍼머컬처 방식의 도시텃밭공원으로 만들려는 은평의 활동가들과 만나면서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이곳에서 퍼머컬처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학교를 열어 생태철학과 삶의 기술들을 가르친다. 퍼머컬처학교와 자립자족학교, 잡초라도충분한풀학교 등이었다. 그와 10~30명씩 모여 공부를 한 이들이 자투리땅과 텃밭에 함께 농사를 짓고, 야산에서 풀을 뜯어 야생초 밥상도 차려 파티도 열었다. 열세 종류 벼를 키워 그 쌀로 열세 가지 떡과 술을 담가 먹고, 동네 장터에 내다 팔기도 했다. 콩을 심어 장과 된장도 담가 먹고 팔기도 했다. 이곳 밥풀꽃 식당에 공급되는 대부분의 생산품도 그들이 생산한 것들이다. 벌써 전환마을은평에만 활동가 10명을 비롯해 100여명이 함께하고 있다.

퍼머컬처학교는 은평뿐 아니라 간디학교가 있는 충남 금산 남이와 경기도 남양주 두물머리, 전남 영암 선애빌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환마을운동은 따로 리더나 위계가 없고, 한두 사람이라도 뭔가 해보고 싶은 이들이 중심이 돼 쉽게 시작하고, 잘되거나 못되거나 평가 기준도 없고, 잘 안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기도 하기에 자연스럽게 번져가고 있다.

하지만 보통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그룹이나 같은 취미로 모이는 동아리와 달리 마을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동양의 명상을 많이 하는 토트네스에서도 손을 잡고 서로 교감하는 ‘조율’과 함께 춤명상을 중시한다고 한다.

이들이 주로 추는 건 오행춤이다. 오행춤은 다섯 단계로 되어 있다. 처음엔 조용한 음악으로 시작한다. 이어 스타카토가 많은, 끊기는 음악이 나오고 세번째엔 카오스로 몰아넣는 음악에 맞춰 자신을 최대한 끌어올려 춤에 몰두한다. 네번째는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기 같은 느낌을 갖는다. 마지막엔 춤을 추는지 쉬는지 모를 정도로 고요해진다. 한 시간의 오행춤은 사람의 한 생애와 비견된다. 이렇게 추고 나면 기진맥진해 한 시간 정도는 그대로 앉아서 고요하게 쉬어줘야 한다. 그러다 이를 두 번, 세 번 반복하기도 한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이런 이벤트를 연다.

몸으로 풀면 굳었던 마음도 절로

“여러 세대가 관계하다 보면 정서적 베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 속도에도 차이가 있어서 ‘아’를 ‘어’로 듣는 경우가 많아요. 오해도 많고요. 그러나 이렇게 몸으로 풀면 굳었던 마음도 풀어지곤 하지요.”

한국인들에겐 좌선명상이나 마음공부에 비해 몸명상이 익숙지 않고 처음엔 어색해하는데도 그가 춤명상을 권하는 것은 그 자신의 변화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서도 안에는 분노가 차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요. 지난 5월 미국대사관 앞에서 경북 성주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반대 집회 사회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예전 같으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끌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분노는 나오지 않는 거예요. 물론 사드 배치의 불합리성을 전달할 수는 있었지만요. 오래 묵은 화는 춤추면서 많이 풀려 나가 버렸나 봐요.”

그가 시끄러운 소란이 아니라 ‘작은 난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자리에서 함께 흐트러지고 망가지고 나면 서로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전환마을은평’ 사이트 www.facebook.com/transitioneunpyeong/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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