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기쁨과 이웃의 기쁨은 하나” 조병호 목사
|
조병호 목사 일제와 한국전쟁, 남북분단,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분열된 건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북에서 박해 받고 남하한 기독교인들은 한풀이 하듯 반공에 매달리는가 하면 극우와 독재에 상처 입은 이들은 좌쪽에 기울기도 했다. 목회자들은 보수파는 보수파대로, 진보파는 진보파대로 성경 전체를 말하기보다 자기 입장을 강화하는 무기로 성경의 부분을 인용해 전체를 왜곡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서울 서초동 하이기쁨교회 조병호 목사(45)도 ‘너는 과연 어느쪽이냐’는 물음을 요구받던 세대였다. 전북 고창에서 양부모를 잃은 뒤 회심해 장신대에 진학한 조 목사는 1987년 장신대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전라도 촌놈’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교회에 가지 못했다. 그는 그런 편견에 앙갚음하는 되풀이의 역사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경상도로 달려갔다. 지리산 산골인 경남 산청군 외고마을이었다. 그날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버스를 네 번 갈아타며 9시간을 달리는 그 길을 52번이나 왕복했다. 갈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외로움에 눈물짓던 노인들의 어깨와 발을 주물러주고 안아주고 돌아오곤 했다. 이 길에 친구들이 하나둘 동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거쳐 영국의 에딘버러와 버밍엄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 유학을 하는 중에도 매년 여름 지리산 자락으로 달려갔다. ‘전라도 촌놈’ 처벌 상처…경상도 산골 봉사로 씻어
성경 통독 하나님 깨달아…학교 강당 빌려 주일예배 그는 지리산으로 갈 때마다 출발 전 1주일 동안 동료들과 함께 성경을 통독했다. 나무만을 보고 분파를 고집하는 대신 숲을 보고,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였다. 여섯살 때 천자문 전체를 외우다 틀려 댓돌 위에서 아버지로부터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던 기억이 생생했던 그는 천자문이나 사서삼경의 전체를 외우면서 직관을 통해 책 전체 내용을 이해했던 우리의 학습 방식을 택했다. 한 글자나 한 문장, 한 권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를 따라 읽어가면서 부분이 전체의 어떤 흐름 속에 있는가를 생각하며 통독하자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용서하며 사랑했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경 통독에 5일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함에도 벌써 2만여명이 동참해 한국 교회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조 목사는 교회 건물 없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 강당을 빌려 주일 예배를 보고, 이 부근 서울교대 네거리 한 빌딩 지하에 다해원이란 열린문화공간에서 신자들을 만난다. 지난 15일엔 300명과 함께 6일 일정으로 산청 수동면 일대 수십개 마을에 10인 1조로 들어갔다. 자신들은 학교 바닥에서 자면서 한끼 식사비로 500원 이상을 쓰지 않는다. 기도와 찬양도 시골에선 자제하고 마을 사람들과 온전히 어울린다. 토요일 새벽엔 그 시골마을에서조차 가장 소외된 집들을 찾아 쌀 두말과 소고기 두근, 라면 한상자 등을 담은 선물을 몰래 두고 돌아오는 게 그들의 오랜 관행이다. 크리스마스 예배와 교회 창립 예배 때도 교인 전체가 외국인노동자센터와 장애우시설에 들러 함께 예배를 보고 그곳에 헌금을 두고 왔다. 조 목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 이웃과 함께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 줄 아느냐”고 물었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