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희 목사 비와 땀에 흠뻑 젖은 옷 속에서 웃고 있는 이는 ‘농부’ 한주희씨(43)였다.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촌3리. 춘천댐 수몰지구민들이 대거 이주해 사는 곳이다. 그는 이 마을 사북교회 목사다. 그러나 이 교회에서 예배당으로 쓰던 건물 안 가득히 비 맞은 감자들을 말리려 널고 있는 그의 모습에 ‘농부’ 외에 다른 직함을 갖다 붙이는 것은 어쩌면 모욕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교회식구요? 1천명쯤 됩니다.” 이런 시골마을에서 교회 식구가 어떻게 1천명이나 될까. 더구나 이 마을엔 사북교회 말고도 교회가 두 개나 더 있다. 실은 주일에 사북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출석신자는 30여명이다. 그러나 그에겐 ‘뭔가를 나눠먹는’ 식구가 많다. 그가 목사라기보다 오히려 농부와 촌장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은 이 일대 지촌리, 심포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식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춘천에서 가장 전통 있는 교회 가운데 하나인 춘천중앙교회 부목사로 6년 동안 재직했던 그는 이 교회로 옮겨오자 처음부터 교회와 마을 사람들 간에 놓인 벽을 허물었다. 부활주일에 돼지를 잡고 막걸리도 받아놓고 동네잔치를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교인들은 자기들 끼리만 노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라며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그는 내친 김에 16개 마을을 돌아가며 노인잔치를 벌였다. 교인 마을사람 벽 없어…이웃과 유기농조합 결성
마을 중고생과 농사 지어…25일간 유럽여행 다녀와 그가 ‘점잖은 목사님’ 행색을 벗어버리고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목사님이 무슨 농사일을 한다고 그러실까”라며 희한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이웃들도 그가 땅을 빌어 성실히 땀을 흘리는 모습에 농사를 지으라며 앞 다투어 땅을 내주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아웃 16명과 함께 유기농 생산자 협동조합을 꾸릴 정도가 됐다. 그는 또 마을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고구마와 감자를 심어 가꿔보자고 했다. 농촌에 살면서도 농사일을 모르는 시골 아이들에게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한 목사는 두 자녀를 모두 농업학교에 보냈다. 아들은 일본 오사카의 애농학교에, 딸은 홍성 풀무학교에 다니고 있다. 애농학교는 풀무학교를 만든 정농회의 정신적 뿌리인 일본 고다니 준이치가 이끈 애농회가 설립한 학교다. 그는 학생들과 농사 지은 결실로 세계 여행을 가자고 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지구인으로서 자기 존재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해주려는 그의 포석이었다. 그러나 시골 아이들에게 유럽여행이란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지난해 여름 유럽여행길에 나서는 순간까지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꿈인가, 생신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 목사와 학생 등 23명이 무려 25일 동안 유럽 13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5년 동안 흘린 땀의 결실이었다. 학생들은 여행 전에 배운 사물놀이를 여행 도중 틈틈이 공연을 해 한국 문화도 알리고 용돈도 버는 기쁨을 누렸다. 2년 뒤 학생들과 아시아 여행을 실현해줄 고구마 밭에서 한 목사의 땀방울이 지금 꿈으로 커가고 있다. 춘천/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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