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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1 17:11 수정 : 2005.06.21 17:11

수원 등불교회 장병용 목사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저 하나 있으니” 하며/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함석헌의 <그대 그런 사람 가졌는가>)

1987년 6월 29일 장병용 목사(47)에게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생을 마감해버린 천승기씨에게 장 목사는 ‘그런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수원시 금곡동 등불감리교회에선 지난 10~11일 ‘사랑의 바자회’가 열렸다. 10여 개의 대형 천막이 세워졌고, 가수 김현성의 자선콘서트와 풍물놀이 어울동이의 거리공연이 이어졌다. 출석 신자가 100여 명에 지나지 않은 가난한 교회가 치르기에 쉽지 않아 보이는 행사다. 장 목사와 신자들은 한 달 넘게 정성들여 준비하는 이런 행사를 5년째 계속하고 있다. 장애인 아트센터인 ‘아름다운 등불’을 짓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상가건물에 세들어 있는 처지인데도 교회 건물 대신 장애인아트센터를 짓기로 한 것은 장 목사가 이미 18년 전 결심한 일이었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대학 때 외지로 나갔던 장 목사는 고향에 돌아와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와 절친했던 천씨는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지만, 장애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늘 길이 막히곤 했다. 결국 천씨는 여주대교에서 강물에 몸을 던졌다. 어린왕자처럼 순수했던 천씨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장 목사는 “이 친구처럼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대신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18년전 재능있는 장애인 친구…가슴에 묻고 생명살리기 다짐
까치 감전될까 십자가 안밝혀…5년째 장애인아트센터 바자회

그는 안산시로 옮겨 목회하던 1991년 그 지역 장애인들과 함께 안산장애인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목회는 녹녹치 않았다. 그는 폐결핵을 얻어 목에서 피를 쏟게 됐고 목회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가 건강과 영혼마저 잃어버린 채 좌절하고 있을 때 그의 아름다운 꿈을 되살려주고픈 한 노점상이 그의 손에 돈을 쥐어주고, 한 지인은 전세돈을 빼서 가져왔다. 그런 이들의 도움으로 92년 인근 서둔동의 한 상가건물 지하에서 시작한 게 지금의 교회였다.

그러나 “빌딩마다 십자가가 걸려 있어도 달라지는 게 없는 세상”에 또 하나의 십자가를 내건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한 교인이 종탑 명목으로 헌금을 해 십자가를 달게 됐다. 그 첨탑 밑에는 까치가족이 둥지를 틀었다. 비가 오던 어느날 까치가 십자가의 불을 밝히는 전선을 쪼았는지 합선이 돼 옥상에 불이 나 까치 새끼들이 타죽고 말았다. 교회에선 그날 회의가 열렸다. 십자가에 불을 밝히면 다시 까치가 타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과 지하에 숨은 교회가 십자가에 불마저 밝히지 않으면 사람들이 교회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장 목사와 교인들은 까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의 불을 밝히지 않는 쪽을 택했다.

생명에 대한 이런 마음들이 모아져 수많은 장애인들의 재능과 생명을 살려낼 장애인아트센터가 내년쯤 지어진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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