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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7 18:47 수정 : 2005.06.07 18:47

갑바도기아의 동굴교회 앞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도 용서와 사랑을 외쳤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과 박해시대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을 말해주는 듯 신기하게도 십자가 문양의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바울 전도지 터키 안티키야를 가다

인간에게 신앙이란 무엇일까.

2000여년 전부터 늘 인류 분쟁과 새 문명 탄생의 빅뱅을 일으켰던,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만남’이 극명한 곳 터키. 그래서 터키는 곳곳에서 이런 물음을 던져준다.

성지순례라는 이름의 여정은 지난달 31일 이스탄불에서 출발했다. 그리스도교를 세계에 전파하기 시작한 바울의 전도지 안티키야(안디옥)에 교회를 세운 서울 광림교회(담임 김정석 목사) 신자 40여 명과의 동행이었다.

터키는 7천만 인구의 99%가 무슬림(이슬람교도)이다. 남한 면적의 7.5배, 한반도 면적의 4배에 이르는 넓은 땅에는 모스크의 첨탑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곳은 잊을 수 없는 땅이다. 노아의 방주가 있던 아라랏산이 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이 있으며, 바울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곳이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했던 이스탄불에서 첫 ‘만남의 장소’는 성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다. 먼저 들어간 곳은 1616년 오스칸 제국의 마호멧 1세가 지은 이슬람사원 블루모스크. 청색의 돔과 거대한 첨탑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모스크란 ‘엎드려 절하는 곳’이란 뜻이다. 모스크 안에서 무슬림들이 메카(이슬람 창시자 마호멧이 태어난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를 향해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맞춘다.

블루모스크의 반대쪽 문으로 나오다보니 블루모스크와 너무나 닮은 거대한 사원이 앞에 서 있다. 성소피아성당이다. 실은 블루모스크는 성소피아성당 성당을 본 따 지은 것이다. ‘소피아’란 지혜를 뜻한다. 블루모스크보다 천년 이상 앞선 537년에 지어진 성소피아성당은 지혜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름이 30미터에 56미터 높이의 돔을 기둥 하나 없이 벽만으로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1453년 이슬람 왕국인 오토만제국이 점령한 뒤 모스크로 개조됐던 인류 사상 최고의 건축물은 1935년 이후 박물관으로 개방돼 세계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 건축물들에 둘러싸인 ‘그리스도 지혜의 전당’을 다시 보게 됐다.

▲ 성지순례를 마친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뒷

인구 99%가 무슬림인 터키
터키 첫 개신교회 한국이 세워
신앙의 만남 충돌 혹은 조화?

성소피아성당의 수모는 로마에 받은 박해에 비하면 약과였을지 모른다. 로마제국의 거대 도시의 하나였던 에페소 등 로마의 유적들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만큼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의 흔적도 또한 역력하다.

로마제국은 그리스도인들을 가혹하게 처형했다. 건장한 이는 무려 15일이나 죽지 않고 온전히 아픔을 겪어 인간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이라는 십자가형과 화형 등의 환란을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숨어둔 곳이 갑바도기아다. 해발 1천 미터. 뾰족뾰족한 민둥산엔 동굴이 뚫려 있다. 갑바도기아의 괴레메 지역에만 1천여 개의 이런 동굴교회들이 있다.

젤베 지역의 동굴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을 말없이 전해준다. 로마군의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은 지하 100미터까지 모래암벽을 파 내려갔다. 무려 지하 20층. 박해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올 수 없도록 겨우 한 사람만이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통로가 지하로 지하로 미로처럼 이어져 허리를 숙인 채 다녀야 했다. 9km 떨어진 다른 지하도시와 긴 터널로 연결돼 있는 지하도시를 보며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객들은 신음을 토해낸다. 광림교회 김연박 장로 등 순례객들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다해 지키려한 신앙의 모습에 숙연해했다. 갑바도기아에서 아타키아를 향해 타오르드산맥을 넘고 끝 없는 밀밭과 초원을 지나 바울의 고향 닷소로 향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시스평원은 알렉산더가 바리우스 3세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세계 제국의 첫발을 내디딘 곳. 가이드 엄상욱씨(31)는 예수가 탄생하기 300여년 전에 알렉산더가 정복을 통해 동서의 교통을 열고 언어를 통일시킨 것이 결과적으로는 바울의 전도를 위해 양탄자를 깐 격이 되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바울의 집을 지나 드디어 최후의 기착지 안타키아. 로마 시대 3대 도시의 하나였고, 초대 그리스도교 확장의 중심지였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숨어 예배를 보았던 실피우스산 ‘베드로동굴교회’에서 성찬례를 가진 순례객들은 안디옥교회로 향한다. 터키 최초의 개신교회로 5년전 광림교회가 세웠다.

무슬림 일색인 터키에서 안타키야는 상대적으로 좀 더 타종교에 대해 관용적이다. 원래 이 지역은 터키가 아닌 시리아의 한 지방으로 시리아계 동방그리스도교인들이 2500여명 가량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터키공화국 출범 뒤 투표를 거쳐 터키에 편입됐다. 더구나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요즘 들어 종교의 자유가 큰 나라라는 점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에선 주민등록상에 자신의 종교를 기입하고 개종하면 이 사실을 재기입해야하기에 여전히 무슬림이 99%인 사회에서 터키인의 개종엔 가족과 직장에서 왕따를 각오해야하는 위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안디옥교회에서 목회하는 함옥상 선교사(34)는 5일 ‘봉헌 5돌 기념 예배’에 맞춰 터키인 7명의 세례식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강행’보다는 좀 더 기다리는 여유를 택했다. 고국에서 신자들과 함께 온 김정석 목사도 “개신교 불모지에서 37명이 예배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며 함 전도사에게도 아쉬움보다는 은혜로움과 축복에 감사하도록 독려했다.

다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신앙이 만나기 시작한 땅. 안티키야에서 이들은 이제 서로 어떤 만남, 어떤 선물을 가져다줄까. 충돌, 박해, 고난, 관용, 사랑, 평화, 조화 가운데. 터키/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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