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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4 17:24 수정 : 2005.05.24 17:24

이현주 목사 ‘예수에게 도를 묻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느님 나라가 이스라엘에 국한되다니요?”

“요즘도 그런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

“많이 있지요. 그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알 껍질이 얼마 동안은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깨어지면 안 되지만 때가 되면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 깨어져야 하듯이, 그 생각도 이제 깨어질 때가 되었다.”

“그러면, ‘예수’라는 이름을 몰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겁니까?”

“사람들과 나 사이를 내 ‘이름’이 이어주는 시대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곰 사냥꾼이 곰 발자국을 추적하다가 곰을 보았으면 더 이상 발자국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지 않느냐?”

<예수에게 도를 묻다>(삼인 펴냄)는 이현주 목사의 마르코 복음서 읽기다. 이 글에서 이현주는 묻고, ‘선생님’ 예수가 답한다. 보통의 ‘읽기’는 아닌 셈이다. ‘문자’의 형식에 갇힌 뜻을 읽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읽기인지 모른다. 문자의 도그마에 갇힌 예수의 뜻을 해방시키는 작업일 수도 있다.

천도교에선 자천자각(自天自覺)이란 말이 있다. 스스로 한울(하나님)임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이 단계에선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해도 하늘의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에 몰입하다보면 자문자답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고 진실한 대화임을 깨닫게 된다.

“성서는 밥이다. 밥을 먹으면 밥은 죽고 기운이 산다. 성서를 읽으면 말씀은 죽고 삶이 살아야 한다. 성서를 읽어서 알게 된 바 나에 관한 지식을, 내게로 오는 길에 걸림돌이 되게 하지 말고 디딤돌로 삼아라. 내 말이나 나에 관한 증언을 받들어 모시지 말고 발로 밟으라는 얘기다. 알아듣겠느냐?”

자문자답에선 노자, 장자, 석가, 수피가 함께 예수의 원어를 깨어나게 한다. ‘선생님’의 방망이가 계란을 깨듯 문자와 선입견에 갇힌 영의 틀을 깨부수고 있다.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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